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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성은 의심을 포함한다. 진리는 전체이다. 그러나 어떠한 유한한 존재도 전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115)
그러나 유한성은 또한 다른 모든 점에 있어서 불확실성을 포함한다. 불확실성은 유한한 존재의 일반적인 불안정성, 그의 존재의 우연성, 그는 스스로 있지 않고 "존재 속으로 내던져진" 존재(하이데거)라는 사실, 필연적인 장소와 필연적인 현재의 결여의 표현이다. (116)
이 모든 형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인간의 본질적인 유한성에, 그것이 창조된 것인 한 피조물의 선함에 속한다. (116)
만일 소외의 상태에서 궁극적인 것의 차원이 차단된다면 상황은 달라지게 된다. (117)
소외는 실존 구조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 소외가 어떻게 해서 압도적으로 나타나게 되는가 하는 것은 역사의 문제이다. 역사에는 항상 파괴의 구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만일 우리 시대의 분석들이 인간 곤경의 악을 산업사회의 구조로부터 유추한다면 이 분석들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유추는 우리의 사회 구조의 변화 그 자체가 인간의 실존적인 곤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함축한다.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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