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노트 10

[신학노트] '종교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

자유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 항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이 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유는 종교의 자유일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믿을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인간이 가진 제일 중요한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가 다 똑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녁 식사로 짜장면을 먹을지 아니면 짬뽕을 먹을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자신의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같은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죠. 저는 사실 종교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왜 그것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이클 샌델이 쓴 "자유의 한계"라는 책에서 샌델은 종교적 자유권에 대해서 거..

신학노트 2022.02.14

[신학노트] 로고스란 무엇인가?

그리스어 로고스(logos)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로고스는 열 개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ground", "plea", "opinion", "expectation", "word", "speech", "account", "reason", "proportion", and "discourse") 각각의 철학 학파에서 로고스를 자신만의 의미로 사용했기 때문에 로고스를 정교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곳에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상징적인 단어입니다. 따라서 로고스라는 말이 사용될 때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의미는 '말'과 '이성', 그리고 저는 한 가지 더해서 '대화'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신학노트 2021.12.16

[신학노트]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_레오나르도 보프의 관점으로

예수가 그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외쳤던 말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고 이제까지 살았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지금까지 잘 살고 있었다면 회개를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회개, 즉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방식을 바꾸고자 마음을 먹고 실제로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가 회개를 하라고 했는데요. 왜요? 왜 회개를 해야 합니까? 회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취했던 삶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

신학노트 2021.10.21

십자가에서 죽은 이는 누구인가?_몰트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p.278-291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는 누구일까요? 쉽게 대답하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는 예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 안에 하나님이 온전히 거하셨다면 예수의 죽음은 예수만의 죽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고려한다면 예수의 죽음은 곧 하나님의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는 예수는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예수의 죽음은 또 하나님의 죽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예수도 죽고 하나님도 같이 죽은 것일까요? 나중에 예수는 부활했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예수와 함께 부활하셨을까요?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제목은 이렇게 정했지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라고 주장..

신학노트 2021.10.14

아우구스티누스_원죄론

원죄는 무엇인가? 원죄는 원래 있는 죄, 본연의 죄, 근본적인 죄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죄를 의미합니다. 원죄론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혹은 생명으로 간주되는 순간부터 이미 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죄론에 따르면 어린아이도 죄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원죄론을 처음 만든 것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니지만 그에 의해서 확립되고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원죄론이 확립된 것은 5세기 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고백록에서 원죄에 대해서 언급하고 유아 세례의 근거로서 원죄론을 사용합니다. 원죄론의 요점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죄를 지었고 그 죄의 본성이 마치 유전병처럼 후손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린..

신학노트 2021.02.08

화이트헤드_과정과 실재_5부 2장 "신과 세계" 요점 정리

과정과 실재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는 어렵습니다. 저도 오래간만에 다시 읽어보았는데요. 역시나 어렵습니다. 혹시 읽어 보신 분들은 스스로 자책하지 마시고요. 한번 읽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번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적 배경이 아주 탄탄하지 않으면 과정과 실재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추천하기는 꼭 한 번 읽어 보세요. 학교 다닐 때 이런 책을 안 읽으면 평생 이런 책을 읽을 기회가 없습니다. 철학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 읽어 보면 좋습니다. 나중에 철학에 더 관심이 생기면 그때 다시 도전해봐도 되고요. 세세하게 하나하나 이해하려고 하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중요한 부분을 짚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신의..

신학노트 2021.02.08

무에서 창조 creatio ex nihilo ( ver. 0.9)

분류) 신학 수업 - 신론 - 창조론 기독교의 창조 교리 중 제일 중요한 내용은 '무에서 창조' creatio ex nihilo 입니다. '무에서 창조'의 반대는 '유에서 창조'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유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무에서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물질로부터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고 혼돈의 세계에서 창조자에 의해 질서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존재 방식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세상이 탄생했다고 말합니다. 무에서 창조 교리가 창조론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이론과 완전히 다른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무에서 창조 교리는 4세기에 확립한 이론입니다. 이때까지 서구 사회에서 세상에 대한 보편적 이해는 세상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물질..

신학노트 2021.02.08

필리오케 논쟁이 갖는 의미

분류: 성령론-필리오케 논쟁 성령은 지금 우리 안에서 혹은 우리 곁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물론 하나님과 예수님도 우리 옆에서 일하시는 분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성령의 역할은 좀 더 긴밀합니다. 하나님도 과거에 일하셨고 지금도 일하시고 미래에 오실 분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주로 과거와 관련이 있습니다. 창조주로서 하나님은 그 역할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과거에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습니다. 과거와도 관련이 있지만 예수님은 주로 미래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우리를 구원할 분이시죠. 다가올 앞날, 현재의 아픔과 고난을 말끔히 제거해 주실 분으로서 구원자 역할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하신 분으로 그리스도는..

신학노트 2021.02.08

고난받는 하나님 (20세기 현대신학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에 나온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고난받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새로운 정통주의가 된다고 맥그래스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고난받는 하나님이 정통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인데요. 가장 영향력 있는 글은 몰트만이 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책입니다. 고난받는 하나님 개념이 20세기에 각광을 받고 정통으로 인정받는 이유에 대해서 맥그래스는 몇 가지 이유를 듭니다. 1) 저항적 무신론의 발생 세계의 고난과 고통 저 위에서 아무런 상관하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죄한 어린아이의 고난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카뮈의 이방인이나 반항하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도 무책..

신학노트 2021.02.08

'삼위일체 하나님' 대신 '셋이하나 하나님'

분류: 삼위일체-삼위일체의 의미 저는 삼위일체 三位一體 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이 너무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 말할 때 약간 체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삼위일체는 발음할 때 부드럽지도 않고 중국글자말이라서 그 의미도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렵고 발음하기도 좋지 않은 삼위일체라는 중국글자말은 기독교 교리에서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잘 담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삼위일체를 풀어서 말하면 '성부, 성자, 성령이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삼위일체라는 말이 이 의미를 제대로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중국글자말을 써서 글자 수를 줄였지만 결국 이 말은 다시 설명해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대신 '셋이하나' 어떻습니..

신학노트 2019.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