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노트

무에서 창조 creatio ex nihilo ( ver. 0.9)

설왕은31 2021. 2. 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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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신학 수업 - 신론 - 창조론

 

기독교의 창조 교리 중 제일 중요한 내용은 '무에서 창조' creatio ex nihilo 입니다. '무에서 창조'의 반대는 '유에서 창조'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유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무에서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물질로부터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고 혼돈의 세계에서 창조자에 의해 질서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존재 방식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세상이 탄생했다고 말합니다. 

 

무에서 창조 교리가 창조론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이론과 완전히 다른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무에서 창조 교리는 4세기에 확립한 이론입니다. 이때까지 서구 사회에서 세상에 대한 보편적 이해는 세상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물질로부터 창조되었다고 하는 플라톤의 견해가 우세했습니다. 플라톤의 철학에 따르면 창조자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기보다는 기존의 물질에 질서를 부여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자라기보다는 건축가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신학자들이 무에서 창조 교리를 내놓았습니다. 이전의 철학과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주장이었습니다. 즉 물질은 다른 물질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무'에서 생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단 '무'가 무엇인지 그것부터 생각해 봐야 하는데요. '무'는 물질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공 상태, 즉 공기 따위의 기체도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리병 안에 공기를 완전히 다 빼내서 그 안을 진공 상태로 만들 수 있는데요. 그것을 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에서 창조는 그런 진공상태에서 세상을 만들었다는 말일까요? 유리병 안을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공간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그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무라는 개념은 공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어떤 공간이 있고 그 공간 안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공간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도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물리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관점에서 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무' 상태로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그래도 과학적인 접근이고요. 사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면 무 상태로 생각합니다. 

 

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로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히 물질이 없는 상태로 보면 안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이 없다는 측면에서 무는 그런 상태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 개념은 그것보다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무에서 창조했다는 것은 세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로부터 변형되어서 지금의 세상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어떤 존재로부터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사과와 귤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우리는 사과를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보니 잼이 있습니다. 그 잼은 사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에서 창조입니다. 그게 아니라 그것이 사과가 아닌 귤에서부터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무에서 창조입니다. 헷갈리는 개념입니다만 설명을 하자면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모르는 물질에서 우리가 아는 물질이 나왔다고 설명하는 것이 무에서 창조입니다. 

 

무를 그냥 없는 상태로 보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있는 존재입니까, 없는 존재입니까? 기독교인은 있는 존재라고 할 테고 비기독교인은 없는 존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죠.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의 상태로 하나님이 존재합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거나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입장에서 없는 존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다른 종류의 존재로서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에서 창조'는 세상은 원래 없었는데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지요. 그것이 아니라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원은 하나님과 같은 종류의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존재의 기원에는 하나님이 있다고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이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세상의 기원이 유인지 무인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무라는 존재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존재라면 우리는 그 무를 파악할 길이 없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처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단지 추측할 뿐입니다. 그것이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그 시작을 다시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이 세상은 시작되었으니까요. 진공 상태에서 물질이 생성될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 연구해 보고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무에서 창조 교리와 거리가 멉니다. 무에서 창조 교리는 신앙 고백이지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공 상태에서 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에서 창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무에서 창조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비존재에서 존재가 만들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철학적 관점의 진술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리 각 사람은 세상에 있는 물질이 그 기원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다른 존재가 그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쓰고 보니 어렵게 쓴 것 같아서 다시 쓰고 싶은데 생각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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