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노트

화이트헤드_과정과 실재_5부 2장 "신과 세계" 요점 정리

설왕은31 2021. 2. 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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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과 실재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는 어렵습니다. 저도 오래간만에 다시 읽어보았는데요. 역시나 어렵습니다. 혹시 읽어 보신 분들은 스스로 자책하지 마시고요. 한번 읽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번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적 배경이 아주 탄탄하지 않으면 과정과 실재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추천하기는 꼭 한 번 읽어 보세요. 학교 다닐 때 이런 책을 안 읽으면 평생 이런 책을 읽을 기회가 없습니다. 철학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 읽어 보면 좋습니다. 나중에 철학에 더 관심이 생기면 그때 다시 도전해봐도 되고요.

세세하게 하나하나 이해하려고 하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중요한 부분을 짚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신의 본성은 양극적이다.

중요한 부분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653페이지에 나온 내용입니다.

 

Image by PublicDomainPictures from Pixabay  

 

그러므로 모든 현실적 존재와 마찬가지로 신의 본성은 양극적이다. 신은 원초적 본성과 결과적 본성을 갖고 있다. 신의 결과적 본성은 의식적이다. 그것의 신의 본성의 통일설에 있어서의, 그리고 신의 지혜의 변형을 통한, 현실 세계의 실현이다. 원초적 본성은 개념적이며, 결과적 본성은 신의 물리적 느낌들이 신의 원초적 개념들 위에 짜여 들어간 것을 말한다.”

 

신의 원초적 본성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본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완전에 해당하는 본성입니다. 신의 원초적 본성은 화이트헤드의 말로 표현하면 절대적으로 풍부한 가능태의 무제한적인 개념적 실현입니다. 구체적 실현이 아니라 개념적 실현입니다. 신의 원초적 본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느낌의 충만성이나 의식을 신에게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화이트헤드는 주장합니다. 화이트헤드는 신의 원초적 본성을 개념적 느낌의 무제약적 현실태라고 지적합니다.

 

신의 원초적 본성은 개념적 실현으로 모든 존재와 함께 합니다. 따라서 원초적 본성의 관점에서 신은 모든 존재를 통일시키는 존재입니다. 원초적 본성은 느낌을 위한 유혹 lure for feeling, 욕구의 영원한 충동입니다.

 

화이트헤드는 신의 결과적 본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의 결과적 본성이란 현실태의 다양한 자유를 신 자신의 현실화의 조화로 수용함으로써 신 자신의 경험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660)

 

신의 결과적 본성을 통해서 신은 세상을 의식하고 경험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원초적 본성은 변하지 않는 완전한 것이라면 결과적 본성은 수시로 변하고 확장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확대시키는 본성인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신은 일자이면서 다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658쪽에 나온 구절은 매우 유명한 구절입니다. 읽어 보죠.

 

"신은 항구적이고 세계는 유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계는 항구적이고 신은 유동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신은 일자이고 세계는 다자라고 말하는 것은, 세계는 일자이고 신은 다자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세계와 비교할 때 신이 탁월하게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과 비교할 때 세계가 탁월하게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세계가 신에 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이 세계에 내재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신이 세계를 초월한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가 신을 초월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신이 세계를 창조한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가 신을 창조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둘째, 신에게는 현재만이 있습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에 따르면 신과 다른 존재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존재는 전이 transition을 합니다. 제가 지난 번 강의에도 말씀드렸지만 화이트헤드가 생각하는 실재는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존재입니다. 존재는 생성되었다가 금방 사라집니다. 다음 존재에게 영향을 미치고 존재, 주로 화이트헤드는 actual entity, actual occasion이라고 표현하는데요. 현실적 존재, 현실적 계기라고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요. 어쨌든 하나의 개체는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존재가 나타납니다. 이것을 전이 transition이라고 하는데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전이 과정을 겪습니다. 그런데 신은 아닙니다. 신은 전이를 겪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오직 현재만 있습니다.

 

Image by Monoar Rahman Rony from Pixabay  

 

649쪽 제1절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사랑은 통치하지 않으며, 또 부동의 것도 아니다. 또 사랑은 도덕에 대해 별로 주의하지 않는 편이다. 그것은 미래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적 현재에서 그 보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649)

 

신에게는 현재만이 있습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따르면 신은 전이를 겪지 않습니다. 기억하세요. 신은 모든 것이 현재입니다. 고통의 관점에서 한번 살펴보죠. 그렇다면 누군가가 과거에 겪은 고통은 신에게는 과거의 고통이 아닙니다. 바로 현재의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은 모든 존재와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신은 원초적 본성으로도 함께 하고 결과적 본성으로도 모든 존재의 경험과 함께 하죠. 그러니까 신은 모든 고통을 현재의 고통으로 함께 짊어지고 있는 불쌍한 분이죠.

 

이 부분은 꼭 기억하세요.

 

신은 위대한 동반자 companion—이해하는 일련탁생의 수난자 fellow-sufferer who understands—이다.” (663)

일련탁생은 불교용어인데요. (기본의미) [불교 사람 이상이 사후(死後) 극락정토에서 서로가 같은 연대(蓮臺위에 왕생하는 이라고 합니다. 무슨 의도로 갑자가 fellow를 일련탁생이라는 말로 번역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함께 짊어지는 친구 정도로 번역하면 되겠습니다.

 

고통의 반대 경우에도 성립할 수 있겠죠.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천국에서 실재성으로 변형되고, 천국에서의 실재성은 세계로 되돌아 이행한다. 이러한 상호 관계 때문에, 이 세상의 사랑은 천국의 사랑이 되고, 다시 이 세상에 흘러넘친다.”(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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