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그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외쳤던 말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고 이제까지 살았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지금까지 잘 살고 있었다면 회개를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회개, 즉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방식을 바꾸고자 마음을 먹고 실제로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가 회개를 하라고 했는데요. 왜요? 왜 회개를 해야 합니까? 회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취했던 삶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은 이후에 가는 나라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이루어질 나라이고 예수는 그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보프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인간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근본적인 유토피아가 실현된 것으로서, 세계의 총체적인 변모이고, 인간 존재들을 소외시키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 고통과 죄, 분열,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73)
보프는 해방신학자답게 하나님의 나라를 해방과 연결시킵니다.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이상향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두루뭉술한 내용이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 이러한 이상향이 자리 잡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소외 상태가 극복된 나라일 것이라는 설명에는 공감이 됩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에 살았던 분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시면서 사람들에게 촉구했던 것은 예수의 삶의 방식을 따르라는 것이었죠. 보프는 예수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친히 인간 존재에 대한 하느님의 답변이 되고자 하신다.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74)
보프가 생각하는 예수를 간단히 말하면 "인간 존재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답변이라는 말입니다. 보프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사람들이 가질 만한 질문이죠. 사람들은 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가, 왜 사랑할 수 없는가, 왜 서로 분열되고 괴로움을 겪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질문은 사람들은 왜 서로 싸우나이죠. 그렇지만 보프는 사람들이 다가올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괴롭고 어지러운 상태이지만 나중에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죠. 보프는 요한계시록을 인용합니다.
(계 21:4-5, 개정)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보프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알리려고 노력하지만 예수가 알리려고 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마지막 때에 이르러서야 실현될 완전한 나라로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서 살았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와 같은 삶을 산다면 세상이 정말 변할까요, 아니면 예수처럼 세상으로부터 축출당할까요? 아마도 여전히 예수와 같은 삶을 산다면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예수가 살았던 삶의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용기가 조금 더 날지도 모릅니다.
예수는 당대의 경청자들에게서는 복음서들에 122차례 나타나고 예수의 입에서 90차례 언급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의 종말에 이르러 성취될 희망의 실현을 의미한다... 이 말은 하느님이 이 세상의 궁극적인 의미임을 뜻하는데, 조만간에 하느님이 개입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으로써 전 창조계의 토대를 회복시켜 주시리라는 것이다.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77)
그렇다면 이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시작되고 누가 시작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죠. 예수의 대답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내가 시작했다"입니다.
그리스도는 자기자신을 해방자로 이해한다. 그 자신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주재하며, 이미 그 나라의 막을 열었기 때문이다.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77-78)
그렇다면 예수가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요? 보프는 하나님의 나라가 막연한 이상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구약 성경에 나와 있는 안식년과 희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과는 거리가 멉니다. 휘황찬란한 물건을 잔뜩 소유한 부자들이 사는 나라라고 생각했다면 완전히 오산입니다.
그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하고 그런 까닭에 서로를 형제자매로 여겨야 한다. 노예들은 해방되어야 한다. 또한 빚들은 탕감되어야 하고, 땅은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고용주들은 하느님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각기 자유롭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레위기는 50년마다 희년이 거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한 이 같은 사회적 이상을 계시해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은총의 해일 것이다. 그때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과 그들 가족에게 되돌려 주어질 자신들의 땅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적 이상은 실현된 적이 없었다.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78-79)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잘사는 나라와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 가는 나라도 아니라 최종적으로 이 땅에 완전히 실현되어야 할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도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 17:21) 보프는 J. 데커의 주석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느님에 의해 이끌려들여진 새로운 질서는 그대들에게 달려 있다. 그것이 미래의 어느 때에 세워질 것인가 하는 식으로 질문하지 말라. 하느님 나라가 마치 어떤 곳에 속해 있는 양 여기저기 찾아 뛰어다니지 말라. 오직 선택하여 그의 대열에 들어라. 하느님은 그대들의 주님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대들 자신을 그분의 뜻에 열어 놓아라. 하느님은 특히 지금 그대들을 기다리신다. 그대들 자신이 준비하여 하느님의 이 마지막 제의를 받아들여라.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80)
정리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따로 영토가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새로운 장소가 아닙니다. 보프는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새로운 질서는 예수가 살았던 삶의 방식을 통해서 배울 수 있으며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안식년과 희년에 펼쳐져야 하는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사회 모습을 통해 그려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끼리 끝없는 경쟁을 부추기고 승리한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차지하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될 것을 바라고 그 나라의 도래를 위해 실천하는 사람이 해야 할 회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식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희년이 묘사하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할 것을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배척당했습니다. 메시아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린 메시아와 하나님의 나라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정치적인 의미가 강했습니다. 보프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이후, 그러니까 기원전 587년부터 거의 자유가 없는 삶을 살았으며 그래서 그들이 바랐던 메시아는 그들에게 자유를 가지고 올 수 있는 강력한 정치 지도자였으면 그들이 바랐던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유배 이후의 성서 문학과 신구약 중간 시기에 중심이 되는 테마이다. 정치를 종교의 한 부분으로 여겼던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구체적으로, 억압하는 일체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을 명시해 주는 것이었다. 모든 것에 대한 하느님의 지배는 또한 정치적으로 입증되어야만 했다. 하느님의 나라를 정착시킬 분, 그가 바로 메시아이다. (83)
보프는 예수가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그들을 실망시켰던 이유는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와 하나님의 나라는 온전히 정치 영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독립된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넓은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참으로 메시아-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성격을 띤 메시아이지는 않았다. 그분의 나라, 왕국은 특정화될 수도 없고 정치와 같은 그런 실재의 일부분으로 환원될 수도 없다. 그분은 우주적, 인간적, 사회적인 일체의 차원들 속에서 그 모든 실재를 치유하기 위해 오셨다. (86)
모든 인격들에 회개와 인간 세계의 철저한 변모를 요구한다는 것, 친구와 원수들을 똑같이 사랑하고 하느님과 인류에 적대적인 일체의 요소들을 극복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그들이 파악하게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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