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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공간, 인과성, 실체를 포함하는 유한성의 범주적인 본성은 피조물 전체의 구조로서 타당한 것이다.
(110)
범주들은 불안을 낳지만 이 범주들은 비존재에 대한 존재의 우위가 경험된다면 용기에 의해서 긍정될 수 있다. (110)
시간이 존재 자체의 힘의 현존을 통한 "영원한 지금" 없이 경험될 때, 시간은 현실적인 현재가 없는 단순한 무상함으로 알려진다. (110)
그는 자신을 위해서 기념물을 만들어서 그의 시간이 아닌 미래 속에 존재하려고 시도한다. (110)
공간이 존재 자체의 힘의 현존으로서의 "영원한 여기" 없이 경험될 때, 공간은 공간적인 우연성으로서, 즉 인간이 속해야 할 필연적인 공간이 없는 것으로 경험된다. (111)
최후의 집에 대한 모든 동경 속에는 이런 욕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111)
가능한 많은 장소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영원한 여기'의 차원을 '보편적인 여기'의 차원으로 바꾼다.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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