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틸리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에는 역동성과 형식이 통일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소외라는 인간의 실존 상태에서는 이것이 분리되어 있다고 이해할 수 있고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질료와 형상의 구분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형상은 틸리히가 말하는 형식과 거의 비슷한 의미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동성은 질료와 다른 의미로 보입니다. 질료는 형상이 되기 위한 가능태의 재료를 뜻하기 때문에 역동성과 통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동성도 새로운 존재를 가능하게 만드는 힘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질료는 재료를 의미하는 물질인데 역동성은 전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틸리히는 인간의 삶에 역동성과 형식이 모두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둘 중에 하나만 있는 삶, 또는 하나만을 추구하는 삶은 소외된 삶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통합적 삶에는 역동성과 형식이 모두 중요한데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소외 상태에 있는 인간이 자기-높임이나 무한대의 자기 욕구에 빠지면 역동성만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역동성은 모든 형식의 굴레를 벗어버리려고 합니다.
그의 역동성은 자기초월을 향한 무형식의 충동으로 이끌린다. 여기서 인간의 자기 초월을 이끄는 것은 새로운 형식이 아니다. 역동성이 목적 그 자체가 된다. (103)
틸리히는 이런 시도는 매우 잘못된 것이면서 동시에 모순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도 형식이 없이 존재할 수 없거든요. 형식이 없는 역동성은 파괴적이고, 반대로 역동성 없는 형식도 파괴적이라고 지적합니다. 형식은 역동성에 의해서 깨지고 역동성은 형식에 의해서 제한을 받습니다. 둘 중에 하나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고 둘 다 필요한 것이고 맞물려 돌아갑니다. 형식은 역동성에 의해서 깨지면서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하고 역동성은 형식으로 통해서 존재의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틸리히가 형식과 역동성을 같이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다음 부분은 개체화와 참여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앞에 부분은 자유와 운명에 대한 것이었고요. 서로 한 쌍이 될 만한 것들을 열거해서 설명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까요? 이 내용의 후반부에 보면 틸리히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과 니체의 힘에 대한 의지 이론을 비판합니다. 두 이론은 지금도 신봉자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틸리히는 두 이론을 비판합니다. 역동성과 형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두 이론은 모두 역동성만을 추구하는 이론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소외라는 곤경에 처한 인간 모습일 뿐이라는 것이죠.
만일 인간이 본질적으로 무제한적인 리비도나 힘에의 의지로서 이해된다면 그런 이해를 위한 토대는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이 아니고 인간의 실존적인 소외의 상태이다... 인간론의 두 유형, 즉 역동적인 인간론과 형식적인 인간론은 인간의 실존적인 곤경에 대한 기술이다. (104)
프로이트나 니체의 이론은 역동적인 인간론입니다. 두 사람의 이론은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의 무한대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 역동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이론에는 힘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이 추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동적인 인간론과는 반대로 형식적인 인간론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네요. 딱히 생각이 나는 것이 없네요. 틸리히는 소외 속 인간은 역동적인 창조성을 잃고 법에 대한 예속에 빠지기도 한다고 지적하는데요. 대표할 만한 이론이 무엇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역동성을 추구하되 형식도 무시하면 안 되고, 형식을 갖추되 역동성을 막으면 안 된다는 것이 틸리히의 주장입니다. 20세기에 사람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은 이론들은 주로 역동성 추구파였던 것 같고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죠. 사람의 삶이란 참 어렵습니다.
'[신학] 폴 틸리히: 그리스도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틸리히조직신학3_109-112] 26. 소외, 시간과 공간 (0) | 2021.10.08 |
---|---|
[틸리히조직신학3_107-109] 25.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을까? (0) | 2021.10.05 |
[틸리히조직신학3_100-102] 22. 제멋대로 하지 마라 (0) | 2021.09.28 |
[틸리히조직신학3_96-100] 21. 자기-상실과 세계-상실 (0) | 2021.09.23 |
[틸리히조직신학3_94-96] 20. 집단적인 범죄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0) | 2021.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