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폴 틸리히: 그리스도론

[틸리히조직신학3_100-102] 22. 제멋대로 하지 마라

설왕은31 2021. 9. 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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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는 자유와 운명을 계속 같이 언급합니다. 인간의 운명은 자유가 있는 운명이고 인간의 자유는 운명이 있는 자유입니다. 자유를 고려하지 않으면 운명이 왜곡되고 운명을 고려하지 않으면 자유가 왜곡됩니다. 

 

틸리히는 자유의 왜곡을 자의 arbitrariness 라고 말하고 운명의 왜곡을 기계적인 필연성 mechanical necessity 이라고 말합니다. 옆에 영어를 써 놓는 이유는 '자의'는 크게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글자말을 쓸 때 생기는 문제입니다. 음은 똑같은데 뜻이 다릅니다. 자의自意는 자기 뜻이나 의지를 뜻하는 말이고요. '스스로 자'를 쓸 때 그런 뜻을 가집니다. 또 다른 자의가 있습니다. 자의恣意는 제멋대로 하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자'는 '방자할 자', '마음대로 자'입니다. 그래서 자유의 왜곡을 이해하기 좋게 우리말로 바꾸면 '제멋대로'입니다. 제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 왜곡이라고 틸리히는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멋대로'는 운명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삶의 자세가 될 수 없습니다. '제멋대로'에 대해서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자유는 무한정의 다수의 내용들과 자신을 연관시킨다. 인간이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 때 자유는 그의 특정성을 상실한다. (101)

 

'제멋대로'도 일종의 자유라고 할 수 있지만 자유의 특정성을 상실한 삐뚤어진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의 구도로 판단한다면 제멋대로는 악한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를 행사하는 주체가 다른 대상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 배려, 아니면 그냥 고려 없이 행동한다면 그러한 자유는 왜곡된 자유이며 자유의 선한 본성을 망가뜨리는 자유입니다.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도 있지만 인간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선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멋대로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자유라는 선한 가치를 극대화한 것이지만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자유로운 행위자와 그의 대상 사이에 어떠한 본질적인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선택도 다른 선택보다 객관적으로 선호될 수 없다. 또한 어떤 대의나 인격에 대한 참여도 의미 있지 않다. (101)

 

한편 운명도 기본적으로 선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운명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운명이 들어가는 어구에 긍정의 느낌이 들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운명의 장난'이라는 말도 비극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운명을 기계적인 필연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인간이 사는 환경입니다. 환경 없이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사는 환경은 그 사람과는 상관없이 알아서 돌아갑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사는 환경에 백 퍼센트 만족하기는 어렵습니다. 불공평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환경, 달리 말하면 운명을 없애 버리면 인간은 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집니다. 

 

운명을 강조하면 자유를 상실하기 쉽고 자유를 강조하면 운명을 상실하기 쉽습니다. 자유를 상실하면 결정론에 빠지고 운명을 상실하면 비결정론에 빠지죠. 둘 다 옳지 않은 자세입니다. 

 

비결정론은 인간의 자유를 우연성의 문제로 만든다. 비결정론은 그렇게 함으로 이것이 결정론과 맞서서 보존하려는 책임성을 제거해 버린다. 그리고 결정론은 인간의 자유를 기계적인 필연성에 예속시켜서 인간을 완전히 조건지워져 있는 사물로 바꾸어 놓는다. (102)

 

이렇게 틸리히는 자유와 우연성의 관계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문제인데요.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내용에 대해서 저는 제 나름대로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는 '주위를 둘러보는 자유'가 되어야 하며 인간이 처한 운명은 '언제나 틈이 있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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