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폴 틸리히: 그리스도론

[틸리히조직신학3_84-90] 18. 욕망과 리비도

설왕은31 2021. 9. 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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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는 인간 소외의 세 가지 표지로 불신앙, 자기높임, 무한대의 욕구를 제시합니다. 무한대의 욕구는 제가 나름대로 번역을 한 것이고 영어로는 concupiscence라고 합니다. 원래 번역은 '강한 욕망'이나 '성적인 욕구'를 뜻하지만 틸리히는 무제한적인 욕구로 이해하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불신앙과 자기높임을 다시 한번 이렇게 정리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중심을 신적인 중심으로부터 분리하는 것(불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자신과 그의 세계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휴브리스)이다. (84)

 

틸리히가 이렇게 다시 설명을 하니 소외의 표지로 왜 세 가지를 드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왜 네 가지나 다섯 가지가 아니고 세 가지로 정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인간은 자신의 존재 근거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는 불신앙이라는 소외의 표지를 가지게 되고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태어난 순간 본질에서 실존으로 전이가 일어나면서 소외 또는 분리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틸리히는 창조 자체를 타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은 문제가 됩니다.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거부하고 무한성을 꿈꾸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휴브리스, 즉 자기높임인데요. 그러면서 인간은 자기 자신 안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욕망 concupiscence, 무한대의 욕구입니다. 분리되었기 때문에 재결합을 갈망하는 것인데 대등한 관계의 재결합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으로 모든 것을 끌어들이려는 욕구를 concupiscence라고 합니다. 

 

무제한적인 풍요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의 자아이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유혹이다. 이런 욕구에 대한 전통적인 명칭이 '욕망' concupiscence, 즉 실재 전체를 자신의 자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무제한적인 욕구(unlimited desire)이다. (85)

 

concupiscence는 옥스퍼드 사전에 찾아보면 "strong sexual desire"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어원을 보면 con+cupere입니다. con은 강력함을 뜻하고 cupere는 desire를 뜻하니까 어원에 있는 대로 뜻을 풀어보면 강한 욕구가 맞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강렬한 결합의 욕구는 성적인 욕구라고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단어를 아마도 '강한 성적 욕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욕망의 포괄적인 의미는 자주 특수한 의미로만, 즉 성적인 쾌락에 대한 갈망으로만 축소되어 왔다. 심지어 정신적인 죄를 근본적인 죄로 간주해왔던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와 같은 신학자들도 욕망을 성적인 욕구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85)

 

틸리히는 conpiscence는 인간의 재결합에 대한 강한 욕구를 드러내는 것으로 단순히 성적인 욕구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제한의 욕구 또는 무한대의 욕구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 안에는 성적인 욕구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한대의 욕구를 보여주는 사례는 참 많이 있습니다. 틸리히가 제시하고 있는 예는 네로 황제, 모차르트의 돈 쥬앙,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은 경우입니다. 그 외에도 인간의 욕심이란 참 끝도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사례들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틸리히는 무한대의 욕구를 설명하기 위해 프로이트의 리비도와 니체의 힘에 대한 의지 will to power를 언급합니다. 틸리히에 따르면 리비도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리비도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특히 성적인 긴장들을 해소하고 이러한 긴장들의 해소로부터 쾌락을 얻으려는 인간의 무제한적인 욕망을 뜻한다. (87)

 

 

그리스도인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틸리히는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은 정직한 현실주의이며 더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 이해와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즉 리비도 이론은 결코 만족될 수 없는 인간의 무제한적인 욕구라는 인간이 처한 곤경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리비도는 인간 소외의 표지 중에 하나라는 것이죠.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불만'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프로이트는 그의 많은 추종자와 비판가들보다 인간의 곤경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을 보여 주었다. 인간의 소외를 해석하려는 신학자는 여기까지는 프로이트의 분석을 따르는 것이 좋다. (88)

 

그러나 틸리히는 프로이트와는 다른 주장을 합니다. 프로이트는 리비도가 사랑을 몽땅 다 잡아먹는 무제한의 욕구라고 생각하지만 틸리히는 리비도가 사랑 안에 거한다면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으며 리비도는 창조적인 에로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 안에 있는 리비도는 무한하지 않으며 다른 존재를 원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잡아먹는 리비도는 무한하면 다른 존재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만의 쾌락을 추구합니다. 리비도는 타인이나 다른 존재를 남겨두지 않는 자기 중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재결합이지 감각적 쾌락이 아닙니다. 틸리히에 따르면, 인간의 소외는 재결합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지 자신의 감각적 쾌락을 극대화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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