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폴 틸리히: 그리스도론

[틸리조3_47-50] 9. 구원받아야 하는가?_틸리히 "조직신학3"

설왕은31 2021. 7. 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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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현저한 대조 속에서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을 지시해 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곧 메시아는 '새로운 시대', 우주적인 갱생, 새로운 현실을 가져온 자로 생각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47)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단 한 단어로 대답을 한다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틸리히는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실존 상황을 지시해 주는 단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며, 왕을 의미합니다. 즉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왕을 의미하죠. 그런데 이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가 인간의 실존 상황에 대해 지시해 주는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인간은 지금 이대로 사는 것이 괜찮지 않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실존 상황은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고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더 종교적인 언어로 말하면, 인간은 구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인간은 구원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인간이 과연 어떠한 상태에 있길래 인간은 구원이라는 것이 필요할까요? 틸리히는 실존주의 이와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존주의는 '옛 시대', 즉 소외의 상태 속에 있는 인간과 인간 세계의 곤경을 분석해 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실존주의는 기독교의 천부적인 동맹군이다. (47-48)

 

 

Image by Engin Akyurt from Pixabay  

인간의 실존 상태에 대해서 기독교가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인 해석이 있었습니다. '죄'와 '심판'이 바로 그것이죠. 그런데 실존주의는 이것을 재발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틸리히는 말합니다. 실존주의는 신학이 할 수 없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인간의 현재 상태를 신과의 연관성 없이 파악하려고 했던 시도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과의 연관성 속에서는 인간은 항상 죄와 심판 속에 놓인 존재로 인식되기 쉬운데 실존주의는 그런 전제를 벗어나서 인간의 실존 상태의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뭔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비관적인 분위기를 감지해 냈습니다. 

 

그는 죄와 심판과 같은 용어들이 그들의 진리를 상실하지는 않았지만 표현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이 표현력은 그 용어들이 실존주의가 우리에게 전해 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들로 채워질 때에만 다시 획득될 수 있다. (49)

 

죄나 심판과 같은 용어는 실존주의를 통해서 다시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틸리히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실존주의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선포를 기쁘게 들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인간의 실존 상태에 대해서 충분히 만족하고 긍정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별다른 반응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왜 그리스도인가?"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왜 구원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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