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폴 틸리히: 그리스도론

[틸리조3-35_39] 6. 산다는 게 뭔가?_틸리히 "조직신학"

설왕은31 2021. 6. 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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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조3-35_39]

틸리: 폴 틸리히 Paul Tillich

조: 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

3: 3권

35_39: 35쪽에서 39쪽까지

 

틸리히는 실존과 실존주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실존이라는 말이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운 용어를 쓰는 것이 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의미를 찾아 들어가기 어렵고 무척 복잡한데 '실존'이라는 말 자체도 어려워서 일단 거부감부터 들거든요. '실존'이란 '사람이 사는 것'을 뜻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있는 게 사는 거니까 '실존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산다는 게 뭔가?'라는 질문과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틸리히는 어원 탐구부터 합니다. 영어로는 exist, 라틴어로는 existere 가 존재하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존재가 실존이냐라고 물어본다면 꼭 그런 것은 아닌데 인간의 존재는 실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 관점에서는 존재 자체가 실존입니다. 인간이 존재하면 반드시 실제로 존재, 즉 실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existere는 어원의 의미로 보면 '바깥에 서 있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 바깥에 서 있느냐? 사람의 어디 바깥에 서 있는 존재냐 하면 틸리히는 비존재 non-being의 바깥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비존재의 바깥에 서 있으니까 존재입니다. 

 

여기서 또 복잡합니다. 그러면 비존재란 무엇일까요? 틸리히는 비존재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절대 비존재와 상대 비존재입니다. 틸리히가 만들어 낸 개념은 아니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개념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절대 비존재를 우크온ouk on, 상대 비존재를 메온me on이라고 말합니다. 절대 비존재는 말 그대로 없는 것,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상대 비존재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상태인데 잠재성을 가진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이렇게 굳이 구분을 하느냐 하면 인간의 실존은 두 가지 면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시 또 복잡합니다. 틸리히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밖에 서다'라는 은유는 논리적으로 볼 때 '안에 서 있다'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안에 서 있는 것만이 밖에 서 있을 수 있다. (37)

 

Image by David Mark from Pixabay  

 

틸리히의 설명이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존재는 밖에 서 있지만 완전히 밖에 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절대 비존재와 상대 비존재 양쪽의 관점에서 다 그렇습니다. 절대 비존재의 관점에서는 인간은 없는 것이 아니고 있지만 인간은 유한성을 가진 존재로서 언젠가는 없어집니다. 다시 절대 비존재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비존재 바깥에 서 있는 상태라고 할지라도 완전히 바깥에 서 있지는 않은 것이지요. 상대 비존재의 관점에서도 인간은 완전히 바깥에 서 있지 않습니다. 즉 사람은 잠재성이 완전히 현실이 된 상태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여전히 모든 인간에게는 현실이 되지 못한 잠재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존재의 어느 쪽의 의미를 사용하든지 간에 실존은 비존재 밖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39)

 

실존이라고 말하면 우리 삶과는 별 관련이 없는 철학의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고 하는 것입니다. 틸리히가 이렇게 실존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실존 상황과 관련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상관관계 방법 기억하시지요? 제가 동문서답 방법으로 불렀습니다. 인간의 실존과 신학의 대답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을 삶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연결하려고 하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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