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폴 틸리히: 그리스도론

[틸리조3-19_24] 3. 틸리히가 신을 이해하는 방법_틸리히 "조직신학"

설왕은31 2021. 6. 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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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 폴 틸리히 Paul Tillich

조: 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

3: 3권

19_24: 19쪽에서 24쪽까지

 

틸리히가 신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자기 초월'과 '탈아'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Self-Transcendent Theism 또는 Ecstatic Theism입니다. 한국말 표현이 그다지 와닿지 않기 때문에 영어로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기 초월'과 '탈아'는 비슷한 의미입니다. '자기 초월'은 자기를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이고 '탈아'는 자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넘어서거나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간이나 세상은 유한성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초월하거나 벗어나더라도 무한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한성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무한성을 경험하더라도 유한성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유한자의 유한성은 무한자의 무한성을 지시한다. 유한자는 새로운 차원 속에서 자신에게로 되돌아 오기 위해서 자신을 초월한다... '탈아적인 신론'이라는 표현에 있어서의 '탈아적'이라는 용어는 일상적인 경험을 제거하는 것 없이 일상적인 경험을 초월하는 것으로서의 거룩한 것의 경험을 지시한다." (20)

 

틸리히는 이것이 자기 신학 전체의 토대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굉장히 중요한 말이겠지요? 틸리히의 신 이해 방법, 혹은 신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틸리히가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합니다. 초자연주의에서 신은 세상의 '위'에 있고 자연주의에서 신은 세상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틸리히는 인간이 공간을 인지하고 가리키는 단어인 '위'나 '안'과 같은 말로 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속성으로 인해서 인간이 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틸리히는 인간의 유한성은 신의 무한성을 지시한다고 주장합니다. 신의 무한성을 경험하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 안에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초월의 경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초월의 경험을 하는 주체는 유한한 인간으로 아무리 무한한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틸리히의 신 이해는 범재신론의 신 이해와 비슷합니다. 범재신론은 신이 세계 안에, 세계가 신 안에 있다고 주장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말합니다. 틸리히의 이해도 비슷하기는 한데 인간이라는 주체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자기 초월이나 탈아의 주체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범재신론에서는 신과 세상이 대등한 관계로 주체와 객체의 구분 없이 병렬로 서 있는 것 같습니다. 

 

틸리히는 자기 초월이나 탈아와 같은 어려운 말로 설명을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21)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이 말이 논리에 어긋납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공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과 한계 이상의 존재입니다. 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과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죠. 예수님의 발언만 생각해 봐도 신과 인간의 관계는 우리가 경험하는 공간의 개념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표현할 때는 어떤 언어를 써야 할까요? 바로 상징 언어입니다. 상징은 실재가 아니면서 실재에 참여하고 사실을 나타내는 언어보다 실재의 진실을 표현하는 데 더 적절합니다. 

 

틸리히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 우리가 유한한 사물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든지 간에 우리는 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다... 둘째, 우리가 유한한 사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신에게 적용될 수 없다. (22)

 

그래서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상징 언어를 통해서 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넘어서거나 벗어나는 경험을 해야 하고 그 경험을 서술하는 언어는 상징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틸리히의 글을 읽다 보니 제가 "자연 과학과 신학"을 가르칠 때 왜 마음이 어려웠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 과학의 언어로는 신을 표현할 수 없거든요. 자연 과학의 언어는 자연주의의 언어입니다. 자연에 신비로운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과학의 언어로는 신을 말할 수 없습니다. 깊은 곳에 들어가 진리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얕은 곳에서 첨벙거리는 것이 좀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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