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폴 틸리히: 그리스도론

[틸리조3-28_32] 5. 상관관계의 방법이란?_틸리히 "조직신학"

설왕은31 2021. 6. 1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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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조3-28_32]

틸리: 폴 틸리히 Paul Tillich

조: 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

3: 3권

28_32: 19쪽에서 24쪽까지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 제3권의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직 본론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서론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본론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중요한 내용이 정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틸리히가 자신의 신학의 기초가 무엇인지 짧고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상관관계의 방법'은 틸리히의 독특한 신학 방법론입니다. 저는 '상관관계의 방법'이라는 이름을 잘못 지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이름만으로는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거든요. 그리고 세상에 관계없는 일들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서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상관관계의 방법'이라는 신학 방법론은 그 이름만 놓고 볼 때는 당연한 것을 다시 꺼내는 듯한 이름입니다. 

 

틸리히는 '상관관계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말은 논리적인 의미에서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는 요소들이 양적인 또는 질적인 병렬 관계 속에서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두 요소 사이의 의존성과 독립성이 통일성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28)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존성과 독립성이 통일성 속에 있는 방법이 바로 '상관관계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의존이면 의존이고 독립이면 독립이지 왜 의존성과 독립성이 동시에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만합니다. '상관관계의 방법'이란 의존성과 독립성이 함께 공존하는 방법이다라고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독립성부터 살펴보죠. 무엇과 무엇이 서로 독립되어 있냐면 질문과 답변이 독립되어 있습니다. 틸리히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독특성을 이것으로 설명합니다. 질문과 답변이 독립되어 있다는 말로요. 보통은 질문과 답변은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무엇입니까?"

"사과입니다."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신학에서는 질문과 답변이 이어져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질문으로부터 답변을 말할 수 없고, 답변으로부터 질문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위에는 질문과 답변을 쓴 것인데, 답변을 통해서 질문을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사과입니다"라는 답변을 보고 질문은 "제일 먹고 싶은 과일은 무엇입니까?"와 같은 질문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동문서답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의 질문이 무엇인지 틸리히는 실존주의의 관점을 제시합니다. 

 

"인간이 묻는 물음은 인간 그 자신이다." (29)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Dasein은 존재 자체가 늘 문제가 되는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그렇습니다.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 내가 왜 사는지 항상 궁금한데 그 대답을 시원하게 알 수 없어서 계속 궁금한 그런 존재이죠. 인간 외에는 존재는 그런 존재가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 자신을 질문으로 삼을 때 신학에서 주는 대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이 주는 대답이 있습니다. 영원, 용서, 그리스도와 같은 대답을 줍니다. 신학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대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대답은 보통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질문과 상관없이 대답은 정해져 있고 질문은 명확하지 않고 구체적인 내용이 계속 바뀝니다. 

 

그럼, 이 질문과 답변은 계속 독립된 상태로 평행선을 달리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틸리히는 의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틸리히는 '실존의 물음'과 '신학의 대답'은 타원의 두 중심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왜 타원의 중심이라고 설명했는지 이해를 하기 어려운데, 여하튼 두 개의 중심이 있고 두 개의 중심은 절대로 합쳐지지 않으면서도 서로 상관없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타원의 기준을 잡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타원의 중심이 실존의 물음과 신학의 대답이라면 타원은 인간의 구체적인 경험입니다. 인간의 경험 안에서 질문과 답변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질문과 답변은 직접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경험 속에서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죠. 

 

"신학자는 그가 선언하는 신학적인 대답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의 전존재로 물음의 상황에, 즉 인간의 곤경에 참여할 때만 신학적인 대답을 확신 있게 전해 줄 수 있다." (31)

 

'상관관계의 방법'은 꽤나 흥미로운 신학의 방법론입니다. 차차 더 알아가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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