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 폴 틸리히 Paul Tillich
조: 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
3: 3권
13_16: 13쪽에서 16쪽까지
틸리히 조직신학 제3권의 서론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보통 좋은 글은 서론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정리해서 씁니다. 유럽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미국은 확실하게 두괄식을 선호합니다. 저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항상 두괄식으로 쓰려고 노력했고 글쓰기를 도와주는 사람들 모두 주제는 맨 앞에 정확하게 나와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런 글의 구조는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하게 강조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어릴 때는 그랬습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좀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학문과 교육이라는 것은 발전하니까요. 틸리히의 조직신학 3권 서론인데 중요한 내용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전체 서론에서 틸리히는 이런 말을 합니다.
"본질에서 실존으로 이르는 길은 '비합리적인' 것이다. 반면에 신으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이르는 길은 '역설적인' 것이다." (14)
신학도 본질에서 실존으로 이르는 길 중 하나입니다. 신이라는 대상은 신학의 본질이지만 신학으로 본질에 닿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학의 실존이죠. 신학은 학문으로서 합리성을 띠어야 하지만 사실 신학의 대상인 본질의 존재인 신에서 신학으로 이르는 길은 필연의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본질과 실존은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습니다.
틸리히의 글을 읽다 보니 조직신학자에 대해서 학생들끼리 농담 삼아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학생들끼리 조직신학자를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가장 조직적이지 않다는 말을 하고는 했습니다. 조직신학자는 신에 대해서 체계를 갖춘 설명을 제공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조직신학자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 서론에 나온 틸리히의 말대로라면 조직신학자는 우리가 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생각하는 잘 조직된 체계가 매우 애매모호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신이라는 조직신학의 대상을 분명히 보여 주는 사람이 아니라 더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것이 신에 대한 진실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신은 인간의 언어나 경험으로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만 신학은 그 작업을 강행하고 결국 다시금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 낯설음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 책의 비체계적인 요소들을 혼란스러운 것으로 여길 것이다. 어쨌든 '비체계적'이라는 것은 비일관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비연역적(non-deductive)이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16)
틸리히는 이 글을 통해서 체계를 갖추고 구성되어 있는 신학의 조직을 무너뜨리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인 체계가 없다는 말이 일관성이 없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최대한 일관성을 띠도록 하는 것이 조직신학자의 목표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은 비연역적이라는 말은 신학이 원인에 따른 결론을 도출해내는 논리 구성에서 벗어난다는 말입니다. 징검다리 건너듯이 중간중간 도약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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