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개인적인 소외와 집단적인 소외
집단적인 범죄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틸리히는 집단적인 범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집단적인 범죄로 보이는 사건은 꾸준히 있어 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틸리히도 이런 점에 대해서는 인정을 합니다.
집단적인 범죄는 인간의 의식에 있어서 결코 완전히 부재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적인 본성에 반대되는 행위들을 저지르고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집단을 파괴하는 지배자들, 지배 계층들, 지배적인 운동들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94)
틸리히가 집단적인 범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이유는 사회집단은 결정의 주체를 가지고 있기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회집단 전체가 범죄를 저지를 결정을 한다면 집단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집단 안에는 하나의 힘의 구조가 있고 결국 결정을 내리는 것은 한 개인이지 집단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과 집단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개인은 스스로 결정의 중심이 될 수 있지만 집단은 결정의 중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중심이 되는 사람의 결정에 집단 전체가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일리가 있지만 반박할 수 있는 허점이 꽤 보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회집단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범죄를 모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결정권자의 범죄라고 보기 어려울 때도 많이 있고 그런 점에서 최종 책임자뿐만이 아니라 그 범죄에 가담했던 사람들도 처벌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 예로 음주운전 방조죄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음주 운전을 한 사람이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그 옆에 탄 사람이 운전자가 음주한 사실을 알고도 운전을 하도록 놔두면 그 사람도 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틸리히는 개인과 집단을 나눕니다. 그리고 집단의 범죄는 존재하지 않지만(95) 자유와 운명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개인이 속한 집단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개인도 운명의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한 도시의 시민들은 그들의 도시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죄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 전체의 운명과 그들의 도시의 특수한 운명에 참여하고 있는 참여자들로서는 죄가 있다. 왜냐하면 자유와 운명이 결합되어 있는 그들의 행위들은 자신들이 참여하고 있는 운명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95)
틸리히의 말은 개인의 자신의 행위에만 책임을 지는 것이 일단 맞지만 운명에 대해서도 간접적인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뜻입니다. 틸리히의 구분은 명확하죠. 자신이 하는 일은 자유의 영역이고, 자신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운명의 영역입니다. 자유의 영역에서만 자신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요. 운명은 직접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한 사람과 그 주변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운명에도 일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한 사람은 개인의 영역에서 자신의 마음대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명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틸리히는 자신의 주장을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어서 설명합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 범한 잘못은 독일 국민 모두의 직접적인 책임은 아니지만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독일 국민만이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전 인류가 함께 책임을 질 부분이 있다고도 말합니다. 물론 누구의 책임이 더 크냐고 틸리히에게 물어본다면 독일 국민이라고 대답할 것 같기는 합니다.
힘의 구조를 생각하면 가장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회집단에 속한 사람은 그 집단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 직접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집단에 속해 있으면서 그 집단이 만들어내는 운명에 기여한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력자가 내리는 범죄적 결정을 방조한다면 가만히 있는 것으로서 범죄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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