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그에 대한 기대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가 새로운 시대를 가지고 올 새로운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왕이며 지도자이고 새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를 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믿었던 예수가 옛 시대의 세력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틸리히는 제자들이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해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는 희망의 파괴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죠. 제자들은 두 번째 선택을 합니다. 희망을 내용을 바꿉니다. 이렇게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예수의 부활과 오순절의 성령 체험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신학적 틀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한 것입니다. 예수의 초림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고 재림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완성될 것이라고 제시했습니다. 아주 깔끔한 설명이죠.
새로운 시대라는 개념은 그리 중요한 개념이 아닙니다.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는 시대가 바로 새로운 시대이죠. 새로운 존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존재는 실존의 조건들 속에 있는 본질적인 존재이며, 본질과 실존 사이의 분열을 극복한 존재이다. (185)
새로운 존재는 실존 속에 있는 본질이며 실존과 본질 사이의 간극을 없앤 존재입니다. 예수가 새로운 존재이며 다른 이들은 예수 안에 있음으로써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안'이라는 단어는 참여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존재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그 자신도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부분이 항상 어렵습니다. 어떻게 예수 안에 거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틸리히는 이 책에서 자세하게 거론하지 않습니다. 잠깐 제 나름대로 살펴보면요.
(요 15:7, 개정)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나온 요한복음 15장이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이고 그 말은 곧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간단하게 말하면 예수님 말씀의 요지는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사랑하면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냐고 물어볼 수 있겠죠. 이것도 좀 애매합니다. 사람이 사랑을 할 때도 있지만 미워할 때도 있고 싫어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예수 안에 있다가 나올 수도 있고 다시 예수 안에 거할 수도 있다는 말일까요? 마치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딱 떨어지면 좋은데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은 그렇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틸리히는 새로운 존재가 왜 새로운 존재인지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새로운 존재는 본질적인 존재의 단순한 잠재적인 성격에 비해서 새로운 것이다. 또한 새로운 존재는 실존적인 존재의 소외된 성격에 비해서 새로운 것이다. 새로운 존재는 현실적인 존재이며, 현실적인 실존의 소외를 극복한 존재이다. (186)
그러니까 예수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라는 말입니다. 본질이라는 것은 완벽하지만 실존 속에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잠재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이 실존 속에 나타나면 잠재성은 극복이 되는 것이지만 실존이 된 본질은 본질과 괴리가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소외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본질로부터 분열된 채로 소외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이 소외 상태를 완전하게 극복한 인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외 상태를 극복한 인간이 있다면 그는 새로운 존재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죠. 예수가 바로 그런 존재였기 때문에 새로운 존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틸리히는 예수라는 새로운 존재의 탄생과 함께 역사는 그 최종 목적을 달성했다고 주장합니다. 옛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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