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 신학

속죄론_틸리히 신학

설왕은31 2019. 11. 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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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입니다. 전자와 후자를 완전히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가의 문제는 그가 한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가 누구인지와 관련이 있는 일입니다. 

 

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단순하게 대답한다면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왜 일어났으며 어떤 효과를 일으켰는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론이 바로 속죄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죄론이라는 말 자체가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거나 죄를 속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미 편견이 들어가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속죄론이라고 부릅니다. 

 

틸리히는 속죄론은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의 속죄론으로 구분합니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이론으로는 아울렌의 '승리자 그리스도 이론'과 안셀무스의 '만족설''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을 감당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승리자 그리스도 이론은 사탄과 하나님의 싸움에서 예수가 참전했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이 싸움에서 패배한 것 같았지만 결국은 부활함으로써 승리했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전쟁이 있었고 예수가 참전했고 예수가 진 것 같았지만 결국 승리했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만족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를 지었고 죄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없고 그래서 예수가 대신 그 벌을 받아서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어서 하나님을 만족시켰다는 이론입니다. 

 

주관적인 측면으로 속죄론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아벨라르의 도덕적 감화설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절한 죽음을 당한 것은 꼭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만약에 승리자 그리스도 이론이나 만족설과 같은 객관적인 측면이 부각된 이론만이 맞다면 예수는 십자가 처형과 같은 극형에 처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 처형과 같은 극형에 처해진 이유는 우리에게 도덕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이론이 바로 도덕적 감화설입니다. 감동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만족설은 객관적인 측면도 있지만 주관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완전히 객관적인 이론이나 완전히 주관적인 이론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는 안셀무스의 만족설이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받아들이는 속죄이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이 모두 고려되고 있다는 점에서 만족설은 강점이 있습니다. 물론 만족설도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죠. 

 

속죄론을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틸리히의 방법에는 분명 좋은 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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