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는 창조는 창조 그 자체 이외의 다른 특별한 목적이 없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창조는 그 자체를 초월하여 어떠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피조물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의 목적은 창조 자체이며 그의 잠재성의 실현이다. 창조자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의 목적은 창조자의 창조력의 발휘이며, 이것은 그 자체를 초월하여 어떠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틸리히, 조직신학 2, 178-79)
위에서 보면 창조의 목적은 피조물의 관점과 창조자의 관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피조물의 관점: 창조 자체, 잠재성의 실현
창조자의 관점: 창조 자체, 창조력의 발휘
창조의 목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있습니다.
1) 성서적인 주장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라는 이사야의 구절이 있습니다. 이 창조의 목적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해서 적용할 수 있을지 충분히 논쟁이 될만한 요소이고, 이스라엘의 창조 목적도 이 문장으로 그냥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입니다.
2) 하나님 스스로 영광을 받기 위해서 (칼빈의 관점)
3) 피조물과 사랑의 사귐을 가지기 위해서 (루터의 관점)
4) 다른 존재를 위한 자기 비움
5) 자기 내부의 생명력이 넘침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생명력의 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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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의 관점은 "창조는 창조 자체로 이미 충분해서 더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
창조 자체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창조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생명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어떤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창조 자체, 인간에게 몸이 있고 생명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단점:
창조의 목적을 알고자 하는 것, 즉 인간이 왜 창조되었느냐를 알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창조의 목적을 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창조의 목적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해 버리면 우리는 또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여기에 또다시 대답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 목적이 없다면 인간은 존재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존재와는 달리 자신의 존재 이유, 존재 목적을 찾아 헤맵니다. 그런데 틸리히의 말대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인간의 창조 목적이었다면 그리고 그 목적은 인간의 존재로 일단 이루어진 것이라면 인간의 죽음은 창조 목적의 부정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의 창조 목적을 종결된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특별히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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