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 신학

로고스가 인간이 되었다_틸리히 신학

설왕은31 2019. 10. 3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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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틸리히, 조직신학 III, 1.V.6 하나님과 인간과 그리스도의 상징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명제는 예수가 신이라고 믿는 기독교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명제입니다. 굉장히 당연히 명제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명제입니다. 그러나, 틸리히는 이 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냥 조금 잘못된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명백한 오류하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라는 주장은 역설적인 명제가 아니고 터무니 없는 명제이다. 이 명제는 그 말들이 의미하는 바를 의미하는 바를 의미하지 않을 때만 의미 있게 되는 말들의 결합이다. (148)

 

십자가에 달린 예수

 

틸리히는 이와 같이 말하면서 이에 대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 신적인 존재들이 하나님 곁에 존재한다는 것은 다신론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둘째, 신적인 존재들이 자연물이나 인간 존재로 변용된다는 신화론의 견지에서 성육신이 해석된다.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겠으나 틸리히는 자신이 말하는 바를 좀더 명료하게 표현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다신론적인 의미나 신화론의 견지에서 성육신이 이해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다르게 말하면, 신이 인간이 되셨다는 명제는 기독교의 특징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다른 종교와 비슷한 종교로 비쳐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신이 인간의 모습이나 다른 동물의 모습을 하고 인간 세상에 내려 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래 동화나 다른 신화에서도 그런 류의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러나, 틸리히는 기독교의 타종교의 차이를 여기서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었지만 유한한 토대를 극복합니다. 그러나, 타종교나 어떤 다른 신화에서도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신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죠. 신이 인간이 되었다면 인간이 된 신은 신일까요, 인간일까요?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신이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한다면 그 존재는 더 이상 신이라고 불릴 수 없죠. 그냥 인간인 것입니다. 반대로 신이 인간이 되었지만 여전히 신이라면 우리는 예수를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해였던 것이죠. 그러니까, 신이 인간이 되었다라는 말 자체는 문제가 많은 명제입니다. "개가 고양이가 되었다"라는 명제를 살펴 보죠. 그렇다면 고양이가 된 개는 개입니까, 고양이입니까? 우리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고 그런 이야기를 쓰고 읽기도 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 존재 A와 B는 A가 B가 되었다라는 식의 말이 성립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금까지의 철학적 이해에서는 그렇습니다. A는 A이고, B는 B이다라는 식으로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틸리히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틸리히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라는 말 대신에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는 요한복음의 진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X)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 (O)

 

"로고스"(logos)는 하나님과 우주, 자연과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자기 현현의 원리이다. "육"(flesh)은 물질적인 실체를 의미하지 않고 역사적인 실존을 나타낸다. 그리고 "되었다"(became)는 하나님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그리고 그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에 참여하신다는 역설을 지시한다. 이것은 형태 변환의 신화가 아니고 하나님이 한 인격적인 삶의 과정 속에서 인간의 곤경에 참여하는 구원자로서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149-50)

 

역시나 틸리히 신학의 기본적인 개념은 소외와 극복의 개념입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소외가 일어났지만, 인간의 유한성 속에 신이 찾아 왔고 신은 소외를 극복합니다. 틸리히의 말을 다시 빌리면 하나님의 자기 현현의 원리를 가지고 역사 속에 뛰어들어 와서 소외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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