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는 인간에게 소외는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불신앙, 자기 높임, 욕망이죠. 불신앙은 존재의 근거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의미하고요. 자기 높임 hubris은 불신앙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존재의 근거로부터 소외된 상태로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욕망은 자기 주위의 모든 존재를 자기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틸리히에 따르면, 예수에게는 인간이 소외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특징이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틸리히의 설명이 좀 부실하기는 합니다. 대충 그런 것 같기는 한데 결정적인 한방이 없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서 자기 높임에 대하여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서적 모습은 그의 메시야적 소명에 대한 그의 자각에도 불구하고 휘브리스, 곧 자기 높임의 어떠한 흔적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베드로가 처음으로 그를 그리스도라고 부른 결정적인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의 메시야적인 임무를 공표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이 칭호의 수용을 그의 폭력적인 죽음의 수용과 결합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초월적인 그리스도의 신적인 형상을 종의 형상의 수용과 결합하고 있는 빌립보서 2장의 바울의 기독론 찬가에서도 똑같이 강조되고 있다. 요한복음은 이에 대한 신학적인 토대를 예수의 말로 귀속되어 있는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니"라는 구절 속에서 제공하고 있다. (196-197)
틸리히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가 성취한 소외의 극복을 무죄성이라는 말로 서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에게 죄가 없다는 말은 너무 소극적인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예수가 성취한 새로운 존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선을 행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틸리히는 예수가 '선'이라는 말을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지적합니다. 예수는 '선'을 홀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리고 예수는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자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 유한한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선을 행했는데, 틸리히는 이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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