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예수는 독특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를 독특한 존재로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독특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그를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시도를 하기도 하고 역사적으로도 예수가 살았던 시기를 다른 시기와 완전히 다른 시기로 따로 떼어놓으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틸리히는 이러한 시도에 반대해서 예수의 연속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가 가진 연속성은 공간적인 것이기도 하고 시간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신약성서의 기록들은 예비적인 계시의 담지자들의 생애로부터 유래된 예수의 족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210)
복음서에 보면 예수의 족보가 지루하게도 길게 나와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길게 예수의 조상들에 대해서 언급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복음서의 저자들이 어떤 식으로 예수를 이해했는지 알 수 있는 거죠. 복음서의 저자들은 이스라엘 역사의 연속성 속에서 예수의 탄생을 이해했습니다. 그 조상들이 없었다면 예수도 태어날 수 없었던 것이었죠. 예수가 정말 독특하고 유일한 존재이기는 했지만 그의 독특성과 유일성은 시간적 공간적 배경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틸리히는 예수는 널찍한 배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틸리히는 반복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예수가 교회에 의해서 그리스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그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210)
교회 공동체 없이는 예수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말입니다.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예수가 그리스도로 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무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늘이 원래 파란색인데요. 어느날 갑자기 빨간색으로 바뀌었다고 생각을 해보죠. 그것은 존재론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인정을 하건 인정을 하지 않건 간에 하늘이 파란색이었다가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존재론적인 것이라면 교회 공동체와 상관없이 예수는 그리스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교회 공동체 없이 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고립된 존재로서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만 그 관계성을 가지고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시간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기 1년에서 30년 사이를 따로 뚝 떼어 놓고 그 앞이 없거나 그 뒤가 없다면 예수가 그리스도가 될 수 있었을까요? 틸리히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비록 새로운 존재가 한 인격적인 삶 속에 나타났을지라도 새로운 존재는 새 존재의 공동체 안에서 공간적인 넓이를 가지고 있고, 새 존재의 역사 속에서 시간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다.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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