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목적은 메시지의 본질을 보호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합니다.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교리가 본질의 수호자 역할을 해 온 것입니다. 즉 교리는 그리스도교의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 만들었다기보다 그 메시지의 오염을 막기 위한 방어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오염될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론입니다. 예수에 대한 이해에 대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항해서 교리를 만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리적 작업의 중심은 기독론의 교리를 창조하는 데 있었다. 그 밖의 다른 교리적인 명제들은 기독론 교리의 전제로 주어지거나 아니면 기독론 교리의 결과였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세례 고백문은 초대교회의 기본 텍스트였는데, 기독론 교리는 이 텍스트의 주석이었다.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근본적인 공격은 간접적이거나 직접적으로 기독론에 대한 것이었다. (216)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에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초대 교회에서 사용했던 이론이 바론 로고스론이었습니다. 틸리히는 로고스가 종교적인 근원과 철학적인 근원 모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예수를 설명하는 데 유용했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그리스도론은 로고스 그리스도론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로고스로 이해하는 것은 성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에 기대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로고스를 사용한 것을 비판할 수 있는데 틸리히는 이는 공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설명하는 데 사용할 만한 다른 개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로고스론이 예수를 설명하는 데 공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딱 들어맞는 설명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아닙니다. 부적합성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개념도 새로운 존재로서 나타난 예수를 이해하는 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시대와 사회의 산물을 사용한 것은 메시지를 보호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선교 활동을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설명하고 그리스도교로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접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접점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그들 중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는 기독교 교회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들이었다. 비의적 제의들, 철학 학파들, 로마제국. 기독교는 자신을 이 모든 것들에게 적응시켰다. 기독교는 비의적 제의가 되었고, 철학 학파가 되었고, 법률 체계가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메시지에 기초한 공동체가 되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218)
그리스도교가 교리를 가지고 메시지를 방어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틸리히는 교리적 명제가 두 가지 실패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개념적 형식입니다. 내용과 형식 모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대표적인 예로 6세기 중엽 이후에 있었던 칼케돈 신조의 반(半)단성론적인 변질을 거론합니다. 틸리히는 칼케돈 신조가 강력한 역설을 쌓아 올려서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보호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틸리히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교 교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메시지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둘째, 하지만 교리는 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신학은 현시대에서도 다양하고 자유롭게 표현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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