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러셀서양철학사

[러셀철학수업] 디오니소스/바쿠스의 탄생 ( 4 )

설왕은31 2023. 2. 7.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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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9) p.46-50

 

고대 그리스는 철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지만 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많았다. 실제로 플라톤의 철학도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았던 오래된 신 중에 하나가 바로 디오니소스(바쿠스)였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라고 부르고 로마 신화에서는 바쿠스라고 부른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주신)이다. 술의 신이라고 해서 타락한 신 또는 웃기는 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디오니소스 숭배로부터 신비주의가 발생했고 그리스도교 신학의 형성에도 한몫을 했다고 러셀은 설명한다. 

 

바쿠스 (1596년 작, 카라바조 1571-1610, 이탈리아)

 

디아니소스는 트라키아족의 신이었는데, 그리스인들은 트라키아족을 야만인으로 생각했다. 트라키아족은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을 하며 신을 섬겼는데 이 신이 바로 디아니소스였다. 그들이 디아니소스를 어떤 모습으로 그렸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고 한다. 트라키아인들이 맥주를 발견하고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지자 이 상태를 신성한 상태로 여기고 디아니소스에게 영예를 돌렸다. 술을 처음 발견하고 술을 마시고 흥겨운 기분이 들 때 아마도 고된 삶에서 벗어난 느낌을 가지게 었을 텐데, 그 순간은 디아니소스가 그들에게 임재한 것과 같은 신성한 시간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트라키아인들이 나중에 포도나무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마시게 되자 디아니소스를 더욱 숭배하게 되었다. 디아니소스는 풍요의 신이었는데 이 역할이 뒤로 밀려나고 술로 인한 '신성한 광기'가 더 부각되었다. 

 

디아니소스 숭배 의식은 트라키아에서 그리스로 넘어간다. 디아니소스 숭배 의식이 얼마나 난잡했을지 상상이 간다. 반드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신을 숭배하는 의식을 거행했을 테니 어땠을지 상상해 보시라. 디아니소스 숭배 의식은 그리스 전통 종교의 적대감에 부딪혔지만 금세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마도 매니아 층을 금방 확보했을 것으로 보인다. 디아니소스 숭배 의식은 야생 동물을 찢어 죽이고 날로 먹는 것과 같은 야만적 요소를 포함했고 이 의식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모여서 밤새 춤을 추기도 했다. 

 

디오니소스 숭배가 그리스에서 성행한 현상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명이 급속히 발전한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인들, 적어도 특정 부류 그리스인은 원시성을 갈망하고, 당대의 도덕이 허용하는 수준 이상으로 본능에 충실한 더욱 정열적인 삶의 방식을 동경했다. 강압에 의해 감정보다 행동이 훨씬 개화된 남녀에게, 합리성은 지루하기 짝이 없고 덕이란 부담스러운 예속으로 느껴질 따름이다. (48)

 

러셀은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을 사려prudence, 또는 예상forethought이라고 지적한다. 책에서는 사려라고 번역했지만 의미로 볼 때 '미리 생각해 봄'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추운 겨울에 먹을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름에 농사를 짓는 일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바로 '미리 생각해 봄'이다. 사람이 단순히 본능에 따라 산다면 여름에 뙤약볕 아래에서 농사를 짓는 행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미래를 미리 생각해 보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문명인과 야만인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사냥은 현재의 쾌락을 즐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문명사회는 본능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바쿠스의 무녀들 (1632-3년 작품, 니콜라 푸생 Nicolas Poussin 1594-1665)

 

이러한 과정은 수전노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멀리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더라도, 사려하면 인생에서 맛보아야 할 최선의 요소들 가운데 일부를 쉽게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디오니소스 숭배자는 사려에 맞선 반동 세력으로 등장한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 도취 상태에 들어가 사려 탓으로 훼손된 강렬한 감정을 회복한다. (49)

 

디아니소스 종교 의식은 종교적 열광enthusiasm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단어의 어원을 보면 신이 사람 속으로 들어온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신과 그를 숭배하는 사람이 하나가 되는 신비주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사려와 열정 사이에 나타난 갈등 관계라고 러셀은 표현하는데 이것은 이성과 본능 사이의 긴장이기도 하다. 균형이 필요한데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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