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9) p.61-67
기원전 6세기가 되어서야 철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탈레스가 바로 밀레토스 출신이다. 밀레토스는 기원전 7세기부터 6세기까지 정치 경제적으로 발전한 도시였다. 밀레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에 속한 지역이었고 지금은 터키에 속하는 지역이다. 러셀이 정치, 경제적인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이것이 밀레토스에 살던 철학자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합리주의적인 과학자 같은 성향을 띠었다는 사실이다. 철학자라기보다는 과학자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탈레스는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탈레스가 활동했던 시기를 추측하는 증거 중 하나는 기원전 585년에 일어났던 일식을 탈레스가 예측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가 천재였다는 것은 아니고 이미 그 당시에 활발하게 문화 교류가 일어나던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들도 이미 19년 주기로 일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월식은 확실하게 예측이 가능하였지만 일식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예측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탈레스가 가지고 있던 지식도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들 수준 정도였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형이상학적 주장이나 종교적인 주장이 아니다. 이는 일종의 과학적 가설이었다. 탈레스는 이 주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세운 가설을 시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마도 최초의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본 물질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밀레토스 학파의 두 번째 철학자로는 아낙시만드로스를 꼽는다. 아낙시만드로스 역시 만물의 근본 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을 내세웠다.
그는 만물이 제일 실체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은 탈레스가 주장한 물이 아니며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실체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나이를 먹지도 늙지도 않는 실체로서 "여러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고 말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여러 세계 가운데 한 세계일 뿐이라 생각했다. 이 제일 실체는 낯익은 다양한 물질 형태로 변하고 그러한 물질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64)
그가 내세운 이론은 지금 읽어봐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이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는 주장은 그 당시에는 그럴듯한 주장이었지만 지금의 과학 지식에 비추어 보면 한마디로 틀린 이론이다.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은 딱히 틀렸다고 지적한 만한 부분이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러 세계 가운데 한 세계일 뿐이라는 주장은 요새 유행하는 멀티버스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그래서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 중 현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학자는 아낙시만드로스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하나의 물질이 완전히 다른 물질을 지배하지 못하고 일정한 한계를 지니며 결국 발생한 근원으로 되돌아간다고 주장한다.
밀레토스 학파의 3대 철학자 중 마지막은 아낙시메네스이다. 그는 제일 실체를 공기라고 주장했다. 영혼이 공기이고 불은 희박해진 공기이고 공기가 응축되면 물이 되고 더 응축되면 흙이 되고 더 진행되면 돌이 된다. 물질의 차이는 응축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고대에는 아낙시메네스가 아낙시만드로스보다 더 존경을 받았으나 현대에는 그 반대이다.
밀레토스 학파는 성취한 업적이 아니라 철학적 시도로 인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학파는 그리스 정신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문화를 만나 빚어낸 성과였다. 밀레토스는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여러 나라와 교역을 하는 사이 원시적 편견이나 미신의 영향이 약해졌다. (66)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은 매우 합리적인 경향을 띠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디오니소스나 오르페우스의 영향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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