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러셀서양철학사

[러셀서양철학] 불 같은 헤라클레이토스 (8)

설왕은31 2023. 3. 2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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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9) p.79 - 91

 

근대 철학의 기틀을 닦았던 사람들은 바로 고대 그리스인들이다. 대표 주자가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이 홀로 위대한 사람이어서 근대 철학의 기틀을 닦았던 것은 아니고 고대 그리스인들 중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플라톤이라는 위대한 철학자가 탄생할 수 있었다. 철학이라고 하면 일단은 연역적 사고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귀납적 사고 형태의 철학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9세기까지는 연역적 사고에 의한 형이상학적 철학이 주로 발전하고 널리 퍼졌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고대 그리스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에 대한 평가는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로 나뉠 수 있는데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근대 철학을 지배한 가설들은 거의 대부분 그리스인들이 처음 생각해 냈는데, 추상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그리스인들이 보여준 풍부한 상상력과 독창성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80)

 

러셀은 반대쪽의 의견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연역적인 방법은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고대 세계를 잘못된 길로 빠뜨렸고 결국 근대 세계를 주도한 대부분의 사상 역시 이 영향으로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지적한다. 무엇이든 의심해 보아야 하는 근대 사상이 고대 그리스인이 가지고 있었던 연역적 사고를 대체하는 것이 옳다고 서술하는데 동의하는 바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완결된 진리를 추정하고 그 진리를 기반으로 세상을 판단했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누가 어떻게 완결된 진리를 획득할 수 있겠는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주도했던 것은 누구보다 플라톤이고 그에게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피타고라스이다. 피타고라스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지만 그전에 유행했고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철학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500년경에 활약했다. 그는 에페소스의 귀족 출신이라는 사실 이외에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만물의 기원 또는 본질에 관심이 많았는데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만물의 근본 실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존재의 탄생은 다른 존재의 죽음으로 인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만물의 근본 실체를 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같은 사람이었고 오만한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일을 즐겼다고 한다. 사람이 악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선을 행하게 하려면 무조건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세계는 만물에 대해 똑같으며, 신이든 인간이든 어느 누구도 창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는 일찍이 불이었으며 지금도 불이고 앞으로도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불로서, 법칙에 따라 타고 꺼지기를 반복한다."
"불이 변형되어 최초로 나타난 존재가 바다이며, 바다의 절반은 땅이고 절반은 회오리바람이다." (86)

 

 

그는 불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은 물과 관련되어 있다.

 

"당신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까닭은 늘 새로운 강물이 당신에게 흘러들기 때문이다." (88)

 

만물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상을 주장했던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말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이 그 당시에 널리 퍼지며 인기를 끌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이 철학에서 추구하는 바가 그의 사상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람들도 그랬고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철학을 통해서 영원한 존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의 삶이 늘 변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인간 스스로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에 갈망이 있었고 이 갈망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었다. 종교는 신과 영혼 불멸을 통해서 영원성을 추구했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사람들이 격변하는 세상과 인간의 삶 속에서 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만물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상을 주장했던 헤라클레이토스보다 플라톤이 사람들에게 더 강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가르친 끝없는 흐름의 학설은 두통거리인데, 이미 보았듯이 과학도 이 학설을 논박할 만한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다. 철학자들이 전력을 다해 이루려는 야망 가운데 하나는 과학이 소멸시킨 듯이 보였던 희망을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시간의 제국에 종속되지 않는 영원한 존재를 찾으려는, 위대하고도 끈덕진 탐구를 감행했다. 이러한 탐구는 바로 파르메니데스와 더불어 시작된다. (91)

 

헤라클레이토스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주류가 될 수 없었지만 현시대에는 오히려 그의 사상이 우리가 사는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과학이 관찰한 바와 동일한 결론은 내렸고, 현시대의 과학은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학문이다. 물론 만물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주장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주장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의 실체라고 주장하는 불은 계속 변하기는 하지만 영원히 꺼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원성을 완전히 부인한다고 보기를 어렵지만 그는 변하지 않는 실체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에 주목했기 때문에 다른 철학자들과 구분되는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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