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이상한 사람이 많이 살았던 것 같다. 엠페도클레스도 그런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철학자이면서 과학자이었고 동시에 예언자이기도 했고 스스로를 신이라고 여기기도 했으니 교주 역할을 하고 싶었던 같기도 하다. 엠페도클레스는 기원전 490년경에서 태어나서 430년경까지 살았고 파르메니데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그보다 나이는 더 어렸다. 엠페도클레스는 민주주의를 지지한 정치가였는데 민주정치 진영과 참주정치 진영 간의 싸움에 밀려서 결국 국외로 추방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오르페우스교에 심취했던 것 같고 추방 이전에는 정치와 학문을 결합하는 데 관심을 두었으며 국외로 추방된 이후에는 예언자로 살았다고 한다. 러셀은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다.
그는 바람의 방향을 조정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하며, 30일간 죽은 듯이 보였던 한 여인을 소생시켰다고도 한다. 최후에는 자신의 신성을 증명하기 위해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뛰어들어 죽었다고 한다. (100)
이런 전설이 전해지는 걸로 봐서는 그는 평범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고대인답게 과학과 철학과 종교 모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과학자이면서 철학자이면서 종교인으로 살았다. 그는 과학 분야에서 몇 가지 지대한 공헌을 했다. 러셀이 첫째로 꼽은 엠페도클레스의 과학적 공헌은 공기가 물질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물질이라고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양동이와 같은 그릇을 뒤집어서 물속에 넣으면 그릇에 물이 차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공기가 물과 같은 물질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양동이에 물이 차지 않는 이유는 공기가 차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식물에도 암수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고 좀 우스꽝스러운 진화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우스꽝스럽다고 한 이유는 그가 유전자 단계에서 일어나는 변이 법칙을 말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커다란 개체나 기관들 사이에 변이가 일어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자의 머리를 하고 양의 몸을 한 동물 또는 뱀의 머리를 하고 개의 다리를 가진 동물과 같은 수많은 개체가 등장했는데 결국 생존에 적합한 생물들만이 살아남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세상에는 네 가지 원소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그의 이론이다. 이 네 가지 원소는 바로 흙, 공기, 불, 물이다. 이 원소들은 영원히 존재하지만 시간에 따라서 계속 다른 비율로 혼합하면서 새로운 물질이 생겨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네 가지 원소로 인해서 발생하는 복합 실체들은 사랑의 힘으로 인해서 결합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툼의 힘으로 인해서 분리된다고 주장했다. 그럴싸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랑의 힘이 득세하는 시기가 있고 반대로 다툼의 힘이 득세하는 시기가 있어서 이 두 힘이 끊임없이 순환된다고 믿었다.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에는 목적이 없다고 보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특정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단순히 우연의 힘과 필연의 힘이 지배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우연의 힘이란 네 가지 원소가 특별한 규칙이 없이 결합해서 새로운 실체가 생겨난다는 것이고 필연의 힘이란 사랑과 다툼의 힘의 주기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엠페도클레스는 물질세계가 구형이라 주장했는데, 황금시대에는 다툼이 구형의 바깥에 존재하고 사랑은 구형의 안에 존재했다. 그러다가 다툼이 점차 안으로 들어오고 사랑이 쫓겨나, 최악의 상태에서는 다툼이 구형 안을 온통 차지할 테고 사랑이 완전히 구형 바깥으로 내몰릴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 분명치 않기는 해도 바로 그때 황금시대가 돌아올 때까지 반대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지만, 황금시대 또한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체 주기는 반복된다. (102)
엠페도클레스의 종교에 대한 견해는 크게 살펴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피타고라스의 견해와 유사하다고 하는데, 엠페도클레스는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면서 허세를 부리기도 했고 동시에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기며 괴로워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왔다 갔다 했는데 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 내입으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악행을 저지르기 전에 무정한 죽음의 날이 찾아와 나를 파괴하지 않는 것이 비통할 뿐이로다!"
"월계수 잎사귀 하나라도 삼가라!"
"가련한 자, 진정 가련한 자여, 너의 손으로 콩을 만지지 말라!"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있고 육체의 욕구를 채우는 행위에 대해서 부끄러워했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콩을 만지지도 말라고 말했던 것을 보면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콩을 먹지 말라는 명령은 피타고라스 교단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였다. 왜 콩을 먹지 말라고 했는지 궁금하다.
러셀은 엠페도클레스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엠페도클레스가 과학 분야 밖에서 보여준 독창성은 4원소설을 내놓고 사랑과 다툼이라는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여 변화를 설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105)
역사가 발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토론할 만한 주제이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대개 역사가 순환한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양이 아침에 떠오르고 저녁에 지는 것처럼 세상에는 반복되는 일이 많다. 사계절이 해마다 돌아오듯이 그렇게 역사는 순환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면 청년이 되고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는 또 청년이 되고 또 아기를 낳고 생명 역시 순환된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이 있으면 평화가 있고 평화가 있으면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고 추정하면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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