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그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멀리서 볼 때는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인다. 러셀은 프로타고라스를 설명하면서 소피스트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소피스트는 워낙 악명이 높아서 만약에 "저 사람 말하는 것이 꼭 소피스트 같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러셀의 설명을 살펴보니 소피스트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소피스트들은 기원전 5세기 후반에 기존의 사상 체계에 대해 회의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이러한 회의주의 운동의 중심에서 활약한 인물이 바로 프로타고라스다. 소피스트는 원래 나쁜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니었고 '교수'나 '교사'라는 말과 거의 비슷한 뜻으로 쓰인 단어이다. 이들은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도 당연히 수입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지식을 가르치고 돈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학교와 같은 공공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알아서 배워야 했는데 따라서 당연히 돈이 있는 사람이 소피스트를 고용할 수 있었다. 소피스트들은 돈 있는 사람들 즉 부유한 상류 계층을 대할 때가 많았으므로 상류층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아테네는 재판에서 배심원 제도를 운영했는데, 배심원은 추첨을 통해서 보통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원고와 피고는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고 보통은 개인 자격으로 법정에 출두했다. 소송에서 이기려면 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논리적인 옮고 그름을 가리는 것보다 대중의 상식에 호소하는 웅변술이 가져야만 했다. 소송에 휘말린 사람들은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연설문을 쓰기 위해 전문가를 고용하기도 했고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 소송에서 이기는 기술을 가르친 사람들이 바로 소피스트들이다. 정치적인 반대 세력에 의해서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법정에서 승리하기 위한 변론 기술이 필요하기도 했으므로 소피스트들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꽤 인기가 있기도 했다.
프로타고라스는 기원적 500년경 압데라에서 태어났고 두 번 아테네를 방문했다.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말로 유명한데 러셀은 이 명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주로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즉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한다는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이다"라는 학설로 주목받는다. 이것은 사람이 제각기 만물의 척도이며,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때 한 사람이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게 되는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프로타고라스의 학설은 본질상 회의적이고, 감각의 속기 쉬운 성질에 근거한다. (130)
플라톤이 소피스트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먼저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이 지식을 가르치고 돈을 받는 것에 대해 비난했다. 사실 이것은 플라톤이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플라톤은 워낙 있는 집안 자식이라서 지식을 가르치고 돈을 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대부분의 소피스트들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생계 수단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돈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소피스트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종교나 덕과 연결하지 않았다. 그들의 가르침은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논쟁술과 같은 실용적인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이상적인 진리나 종교적인 선과 연결하지 않았다. 즉 그들에게는 논쟁이나 소송에서 이기는 논리나 기술이 중요할 뿐 그들이 낸 결론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개인의 삶을 부도덕적인 방향으로 이끌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플라톤과 같은 이상주의자에게는 소피스트의 학문적 경향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과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결국 선과 덕을 고취하는 고결한 결론을 냈는데 소피스트들은 그렇지 않았다. 소피스트들은 나쁘게 말하면 회의적이었고 좋게 말하면 매우 솔직했다.
소피스트들이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뒤를 이은 철학자들에게 불러일으킨 반감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소피스트들의 지적인 우수성에서 비롯되었다. 전심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다 보면 도덕적인 고려를 무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특정한 진리가 주어진 사회에서 덕성을 높이고 교화하는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점을 미리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소피스트들은 논증이 그들을 어디로 이끌든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논증을 따라가다가 종종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131-132)
인용 구절을 보고 알 수 있듯이 러셀은 소피스트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플라톤 시대 당시에는 플라톤의 비판을 받았고 플라톤의 철학이 유럽을 휩쓸고 있는 오랜 기간 동안 소피스트는 궤변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소피스트들은 현대 시대에 더 적합한 선생님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어울리는 철학자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회에 덕이 될 만한 정해져 있는 결론으로 논증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결론을 내리거나 완전히 다른 해석을 통해 기존의 이론을 해체하고 회의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면 현대 철학자들과 매우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이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은 뻔한 결론으로 논증을 전개했던 이유는 부도덕한 가르침 특별히 부도덕한 정치 학설을 가르친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며 국가의 법은 강자의 이익을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권력 다툼이 일어날 때 그 다툼을 조정할 공정한 기준은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고대보다도 오늘날 찬성하는 무리가 더 많아졌다. 하지만 러셀은 이와 같은 부도덕한 주장들은 소피스트들의 특징을 나타내지는 않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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