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서양철학사 p.138-152
러셀은 소크라테스가 역사가들이 매우 다루기 어려운 주제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직접 저술을 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한데 그 기록이 온전히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다루기 매우 어렵다. 만약에 그에 대한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면 꽤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일종의 창작물이라고 한다면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고 여기기도 어려운데 이유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남긴 크세노폰과 플라톤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그리 많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적 469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399년, 그러니까 70세 정도에 사형 선고를 받고 죽었다. 그는 아테네의 중간 계층 시민이었고 젊은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쳤으나 소피스트처럼 돈을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테네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좋은 말만 했다. 그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신앙심이 깊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서술하고 있다. 크세노폰의 서술에 문제가 있는 이유는 만약 그렇다면 왜 아테네 시민이 소크라테스에게 적대감을 보였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크세노폰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지어낼 정도로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서술한 것을 사실로 믿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러셀은 크세노폰이 우둔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확한 서술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소크라테스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하지만 그의 기록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고 일부 내용은 소크라테스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플라톤의 경우에는 크세노폰의 경우라는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플라톤의 글에는 소크라테스가 자주 등장하고 그가 한 말도 길게 서술되어 있는데 문제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진짜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지 아니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서 플라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플라톤의 글은 허구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그의 서술은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플라톤이 자신의 글에서 소크라테스를 완벽하게 자신의 뜻대로 창조해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래도 그나마 가장 역사적인 서술로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책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말을 듣고 기억한 내용을 문학적으로 다듬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 책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를 기소하는 고소장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사악한 자이며 땅 아래에 있는 것과 하늘 위에 있는 것을 탐구하는 괴상한 사람이고, 나쁜 명분을 좋은 명분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에 능한 데다 그런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까지 한다 (141)
더불어 그에 대한 고소는 국가에서 섬기는 신을 숭배하지 않고 거짓 신을 끌여 들여와 젊은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에게 적대감을 샀던 것은 명약한 사실인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귀족층을 지지하는 당파와 깊은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의 제자들 대부분이 귀족 출신이었는데 그 제자들은 아테네 시민들을 괴롭히는 앞장섰기 때문에 덩달아 소크라테스도 미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재판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는데 그 당시 아테네 재판정에서는 원고 측이 요구한 형량과 피고 측이 제시하는 형량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만약에 소크라테스가 재판부가 납득할 만한 형량을 제시했다면 그는 사형을 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30미나 벌금형이라는 가벼운 형량을 제시했고, 이에 광분한 배심원들이 결국 그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면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만약에 그가 적당한 형량을 제시했다면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낮은 형량을 제시함으로써 사형을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왜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의 지혜를 알아보려고 노력했는지 그 이유를 몰랐는데 러셀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일찍이 델포이 신전에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자가 있는지 물었더니 더 현명한 자는 없다는 신탁이 나왔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신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기 때문에 무척 당황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신의 잘못을 입증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현명하다고 소문한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닌다. (143)
그래서 실제로 돌아다녀 봤더니 사람들이 모두 현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 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서 좀 나쁘게 말하면 말싸움을 통해서 알려주려고 했으니 사람들에게 미움을 산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오로지 신만이 지혜롭지요. 신은 신탁을 통해 인간의 지혜란 가치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 합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이름을 사례로 써서 이렇게 말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사실은 가치 없다는 것을 아는 자가 바로 가장 현명한 자라고 말이지요." (143)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언도받고 죽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영혼 불멸을 확실하게 믿었으며 죽음 이후의 삶은 현재의 삶보다 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꿈꾸지 않고 잠자는 것처럼 좋은 일이거나 영혼이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여겼다. 이와 같은 믿음은 오르페우스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오르페우스교도는 아니었다. 기본 교리만 받아들였을 뿐, 오르페우스교의 미신적인 요소나 정화 의식에 대해서는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어떤 이가 오르페우스, 무사이오스, 헤시오도스, 호메로스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몇 번이고 흔쾌히 죽으렵니다. (147)
러셀의 글을 통해 소크라테스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강직증성 혼수상태에 빠지곤 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계속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고는 한다. 단지 몇 분 동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밤새 그 자리에 서서 생각하기도 했다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믿기 어려운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어딜 가다가도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서서 오랫동안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몇 분 정도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일화가 있었던 것은 같은데 몇 시간 동안 서 있거나 밤새 서 있었다는 일화는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을 가르쳤던 방법은 대화법이다. 변증법이라고도 하는데 변증법은 다른 뜻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법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 대화법은 질문과 답변을 통해 지식을 탐구하고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소크라테스가 고안한 것은 아니고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제논이 처음 체계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대화법이 지식을 탐구하는 방법으로 모든 지식에 통하는 방법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과학보다는 윤리 문제에 더 몰두했기 때문에 대화법이 잘 통했던 것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대화법이 통할 리가 없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리 대화를 한들 지구가 둥글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다. 소크라테스가 대화법을 신봉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는 영혼 불멸을 믿으며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영혼의 세계에서 영원한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해 냄으로써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이미 진리를 알고 있고, 단지 그것을 기억해 내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만큼 충분한 지식을 이미 가졌지만 사고하는 도중 혼란에 빠지거나 제대로 분석하지 못해서, 즉 이미 아는 지식을 논리적으로 능숙하게 이용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들은 소크라테스식 방법을 활용하여 적합하게 다룰 수 있다. 이를테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플라톤식 대화법으로 토론하기에 적합한 문제로 유명하다. (151-152)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일반이들에게도 매우 유용하고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왜냐하면 대화법을 통해 논리적인 일관성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다룰 필요가 있는데, 사실 플라톤을 다룰 때 소크라테스는 다시 거론될 수밖에 없습니다. 플라톤의 저술에 소크라테스가 주인공급으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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