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러셀서양철학사

[러셀철학수업] 데모크리토스

설왕은31 2023. 6. 2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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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은 원자론의 창시자로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두 사람을 거명한다. 하지만 원자론 하면, 데모크리토스다. 레우키포스는 매우 생소한 이름이다. 레우키포스는 기원전 440년경에 활동했다고 하며 밀레토스 출신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레우키포스의 존재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가 정말 실존했던 인물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가 신화 속 인물이었다면 그가 남긴 말이 이렇게 많이 남았을 리 없다고 반론을 펼치면서 실재로 있었던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대표적인 원자론자는 데모크리토스다. 트라키아의 압데라 출신인 데모크리토스는 기원전 420년경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 그의 철학 사상 중 일부는 가장 유명한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에게 응수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은 오랫동안 아테네에서 무시되었는데 일단 그는 주류 철학자는 아니었고 플라톤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는 정도를 넘어서서 아주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의 관점은 놀라우리만치 근대 과학의 관점과 흡사했으며, 그리스 사상이 범하던 대부분의 과오를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만물이 원자들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이 원자들은 기하학적인 차원에서는 아니지만 물리적으로는 분할될 수 없다. 또 원자와 원자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으며, 원자들은 파괴될 수도 없다. 원자들은 늘 운동했고, 운동을 하며, 앞으로도 운동을 계속할 것이다. 게다가 원자들의 수는 무한하며 원자들의 종류도 무한하지만, 모양과 크기가 각각 다르다. (116)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론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현대 과학이 발견한 물질의 특성을 머릿속으로 직관을 통해 그려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자론자들은 현대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결정론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현대 과학자들이 다 결정론자인 것은 아니지만 과학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철저하게 따지는 경향이 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다면 원인이 있다. 원자A와 원자B가 부딪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두 원자의 속도와 크기, 그리고 질량을 알 수 있다면 그다음에 일어나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원자론자들은 이와 같은 결정론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설명했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자론자들인 최초의 운동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초의 운동을 억지로 설명하는 것보다 설명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원자론자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섣부르게 추측하거나 주장하지 않았을 뿐 매우 과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데모크리토스가 일반적인 철학자와 달랐던 점은 목적인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는 데모크리토스는 열등한 철학자로 취급했는지도 모른다. 목적인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상식적인 것이다. 제빵사가 밀가루 반죽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빵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빵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심심해서 밀가루 반죽을 하거나 밀가루들이 서로 붙으려고 하고 제빵사가 그것을 돕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제빵사는 밀가루 반죽을 하는 것이다. 철학과 달리 과학은 기계론적 지식에 의해서 진보했다. 기계론적 질문과 의문을 가졌고 기계론적 설명을 시도하면서 과학은 발전했다. 목적인에 대한 설명은 결국 이 세상의 목적에 대해서 묻게 된다. 그러면 이 세상을 창조한 신에 대한 이론을 끌어들이게 되고 그다음에는 알 수 없는 추정을 할 뿐이다. 

 

헨드리크 테르브뤼헨_데모크리토스 (1628)

 

그런데 우리가 인과 연쇄 전체를 야기한 원인이 무엇인지 묻게 되면, 다시금 조물주 개념에 빠져들게 되지만, 조물주 자신은 어떤 원인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인과적 설명은 마음대로 정한 독단적인 시초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 원자들의 최초 운동을 설명하지 않은 채 남겨두었다는 점이 원자론만의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18-119)

 

데모크리토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였고 현대의 유물론자와 매우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영혼도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생각도 신체에서 일어나는 신체 작용 중 하나로 보았다. 목적론을 거부했기 때문에 신의 창조 목적이나 우주의 목적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낙사고라스가 주장한 정신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하루하루를 즐기자는 카르페 디엠이나 욜로족처럼 그는 유쾌함이 인생의 최고 목표라고 생각했으며 그를 위해서 지적 활동과 온화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폭력을 혐오했고 성욕이 인간의 의식을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데모크리토스는 생각을 비롯한 지적 활동을 즐겼던 사람으로 이를 방해하는 것에 대해서 적대시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데모크리토스를 이렇게 평가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 고대 후기와 중세 사상을 타락시킨 특이한 결점을 보이지 않은 마지막 철학자이다. (124)

 

러셀은 다른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데모크리토스 이후 가장 우수한 철학에서조차 우주보다 인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125)

 

현대 과학에 기반을 두고 철학적 사고를 펼친 러셀에게는 데모크리토스가 매우 위대해 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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