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서양철학사(을지문화사, 2009) p.170-183
플라톤은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 영향력 측면에서 보면 위대하고 존경해야 하는 철학자인 것 같은데 러셀은 플라톤을 전혀 그렇지 판단하지 않는 것 같다. 특별하게 나쁘게 보려고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사람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플라톤에 대한 존경심을 빼고 그냥 건조하게 그의 이론을 살펴보면 좋게 볼 수 없다고 여긴 것 같다. 나도 플라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러셀의 설명으로 플라톤의 이론을 들여다보니 문제가 많아 보이기는 한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상 국가의 구조를 설명한다. 이상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사실 이 조건부터 말이 안 된다. 그리고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플라톤은 개인의 정의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고 국가의 정의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즉 정의로운 국가에 대해서 탐구한다. 그는 최선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 시민을 세 계급으로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평민 계급, 군인 계급, 수호자 계급 이렇게 세 계급으로 나눈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계급은 수호자 계급이다. 수호자 계급은 입법자가 세운 법을 실행에 옮기는 계급이다. 수호자 계급은 특별 계급니다. 러셀은 플라톤이 말한 수호자 계급은 파라과이에서 선교회 활동을 벌인 예수회 수도자들이나 1870년 이전 교회 국가의 성직자 계층, 현대 소련의 공산당 계층과 같이 특수한 목적 달성을 위해 별도로 존재하는 계급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플라톤은 교육과 음악을 엄격하게 통제하길 원했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에게 좋은 문학작품과 좋은 음악만을 들려주면 그들이 정의로운 국가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질이 키워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작품은 읽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신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선한 신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둘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전쟁에 내보낼 때 도움이 안 된다. 셋째, 큰 소리로 웃으면 안 된다는 예법에 어긋나는 이야기가 많다. 넷째, 흥청망청 축제를 즐기는 시구와 정욕에 탐닉하는 신들의 묘사가 절제를 방해한다.
이와 같은 플라톤의 생각은 사실 매우 이상하다. 사람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좋은 것만 들려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이치에 맞는 것 같기도 한데, 현실에서는 이상한 결과를 가져 온다. 플라톤은 극작가를 추방하는데 왜냐하면 연극에는 항상 악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악인이 나오면 그것을 연기하는 사람들도 악인을 흉내내야 하고 하고 연극을 보는 사람들도 모방할 수 있기 때문에 악인이 나오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여자와 노예와 같은 열등하다고 판단되는 인간도 연극에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연극에는 남자 영웅만 나올 수 있었는데 이것은 자기가 보기에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예 극작가를 추방해 버린 것이다.
플라톤은 음악에 대해서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디아와 이오니아식 화성이 금지되어야 하는 까닭은 리디아식 화성은 슬픔을 표현하고, 이오니아식 화성은 정신의 긴장을 풀기 때문이다. 도리아식은 용기를 북돋우기 때문에, 프리지아식은 절제를 돕기 때문에 허용한다. 이렇게 허용하는 리듬은 단순하며, 단순한 리듬은 용감하고 조화로운 삶을 표현한다. (173)
플라톤은 수호자 계급에게 공산주의를 제안하는데 이유는 전체 국가의 선을 위해서 부와 가난 모두 해롭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일리가 있다. 플라톤은 개인의 행복보다는 정의로운 국가 건설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공산주의적 제안을 한 것이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부를 축적하는 것이 좋겠지만 빈부의 격차가 커지는 나라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 어려울 수 있다.
플라톤의 이상향 이론에서 가장 이상한 것이 결혼 제도이다. 개인의 행복을 무시하고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추구한다면 결혼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플라톤은 자신만의 특별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우리 생각에는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이치에 맞는다고 여겼을 것이다.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는 인구가 적정선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쟁 때문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군대가 있어야 한다. 군대 없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는 적정한 인구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인구가 너무 많아져도 문제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정기적인 연회를 열어서 추첨에 의해서 신랑과 신부를 맺어준다. 임의로 맺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국가에서 혈통이 우수한 남자와 여자가 자식을 많이 낳을 수 있도록 조작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떨어져서 국가가 양육해야 한다. 부모도 자식이 누군지 모르고 자식도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 기형아나 약한 아이는 비밀 장소에 버려진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 나이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로 부른다.
플라톤은 속이는 일이 국가의 특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가가 속이는 이유는 강력한 국가 건설을 위해서다. 국가가 속여야 하는 중요한 거짓말은 신이 인간을 세 종류로 창조했는데, 금으로 빚은 최고 계급, 은으로 빚은 둘째 계급, 동과 철로 빚은 평민 계급으로 창조했다는 교리다. 국가가 계속 이렇게 교육을 하면 점차 모든 세대가 신화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의 전체에서 다룬 명목상의 목표인 '정의'를 정의 내리는 작업은 4권에서 한다. 정의는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몫을 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데서 실현된다고 한다. 국가는 상인 계급, 보조 계급, 수호자 계급이 각각 자기 몫을 하고 다른 계급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면 정의롭다. (176)
플라톤이 이런 식으로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론을 막 내세운 것은 정의로운 국가라기보다는 막강한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허점이 참 많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면 국가라는 큰 시스템은 잘 돌아갈 것 같지만 자기 역할을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자기 취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이것을 허용해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특정 분야에서 자기 몫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고 국가가 제대로 운영되기 어렸다. 둘째, 부모가 하던 일을 물려받으면 된다. 그런데 이 역시도 안 된다. 누가 자신의 부모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가 알아서 각 사람들의 역할을 지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큰 일 중 하나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플라톤이 이와 같은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해서 달성하려는 목표는 무엇일까?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전쟁의 승리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엄격성으로 말미암아 분명히 예술작품을 창작하지도 학문을 체계적으로 확립하지도 못한다. 다른 점과 마찬가지로 이런 점에서도 스파르타와 유사하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고 해도 전쟁 기술과 충분한 식량이 성취하게 될 전부이다. 플라톤은 아테네가 기근과 패전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시기에 살았기 때문에, 아마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악을 피하는 일이야말로 정치적 수완을 다해 성취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78-179)
이 다음 부분에서 러셀은 플라톤의 이상향에서 말하는 '이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룬다.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이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이상향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러셀은 국가론 1권에 나온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옹호하는 듯하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선언한다. 국가론에서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은 궤변으로 일축된다. 하지만 선악의 기준이 존재할 수 있을까?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고 플라톤은 선 자체가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러셀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취한다. 객관적인 이상 또는 선이 존재해야만 이상향도 제시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이상향도 헛소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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