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철학에 대한 문제를 다룹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가가 제대로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죠.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 정신을 갖출 때 비로소 우리 국가는 살아나 햇빛을 볼 수 있다네. (184)
플라톤은 어원에 따르면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단순히 지혜를 사랑하는 호기심만 강한 사람을 철학자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플라톤은 철학자는 진리를 통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철학자는 아름다운 사물도 사랑하지만 더불어서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개별 사물의 경우에는 그 사물이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아름답지 않은 부분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아름답지 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런 관점에서 플라톤은 개별 사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은 개별 존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편 존재에 대해서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데아 이론입니다. 러셀은 이데아 이론을 논리 부문과 형이상학 부문으로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논리 부문부터 살펴봅시다. 러셀은 고양이를 예로 들어서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을 설명합니다. 세상에 고양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고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물이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도 있고 털이 긴 고양이도 있고 다리가 짧은 고양이도 있고 눈동자가 파란 고양이도 있습니다. 이렇게 고양이마다 다 모양이 다르지만 고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개별 존재로서 고양이가 보편 존재로서 고양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나누어 갖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별 존재를 보고 고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바로 보편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러셀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보편 고양이는 개별 고양이가 태어날 때 태어나지 않으며, 개별 고양이가 죽을 때도 죽지 않는다. 사실 보편 고양이는 공간과 시간을 차지하지 않는데,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187)
형이상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고양이라는 낱말은 신이 창조한 이상적인 고양이를 지칭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개별 고양이는 신이 창조한 이상적인 고양이의 본성을 나누어 갖지만 불완전하게 나누어 갖습니다. 이상적인 고양이는 존재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개별 고양이는 이상적인 고양이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의 불과한 개별 고양이입니다. 침대를 예로 들어 이렇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침대는 여럿 있지만 침대의 이상이나 형상은 하나만 존재한다. 거울에 비친 침대의 영상이 현상일 뿐 실재가 아니듯, 갖가지 개별 침대는 신이 만든 실재하는 것의 이상 하나를 모사한 침대들일뿐이므로 실재하지 않는다. (187)
플라톤의 이론에 따르면, 철학자라면 응당 이데아 세계에 관심을 가져야지 이데아 세계의 현상에 불과한 개별 사물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철학자라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필요한 자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상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이데아 이론을 제대로 알고 있는 철학자가 군주가 되어야 할 텐데요. 플라톤은 철학과 거리가 먼 도시국가에서 철학자가 군주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군주에게 철학 교육을 시켜서 철학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플라톤에서 철학은 진리 통찰이기 때문에 철학자와 같이 진리를 통찰할 수 있는 군주가 있다면 이상적인 국가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의 기대에 부응했던 군주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데아 이론과 관련해서 유명한 것이 바로 동굴의 비유입니다. 플라톤은 사람들이 실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굴 속에서 갇힌 채로 앞만 보도록 사슬에 묶인 것으로 묘사합니다. 뒤쪽에서는 모닥불이 타고 있으며 죄수와 모닥불 사이에는 실제 사물이 존재하고 죄수들은 실제 사물의 그림자만 보게 됩니다. 그 그림자가 실재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은 실제 사물을 따로 있는 것이죠. 플라톤은 철학자만이 이 죄수 상태를 벗어나서 바깥세상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바깥세상은 이데아 세상이고 그 세상이야말로 그림자 세상이 아닌 참된 세상이라고 주장합니다.
플라톤 이론은 정교하지 않습니다. 동굴 비유도 정교하게 생각해 보면 이상한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대충 느낌만 받아들이면 될 것 같고요. 러셀도 플라톤의 이론에 오류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이론을 공부하고 그를 위대한 철학자로 인정하는 이유는 바로 보편자 문제를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라는 데 있습니다. 논리에 오류가 많다고 하더라도 최초로 보편자 이론을 주장했다는 점과 독창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고유 명사만 포함하는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으며, '사람', '개', '고양이' 같은 일반 명사도 있어야 한다. 일반 명사가 없다면 '유사한', '앞에' 같은 관계어가 있어야 한다. 이런 낱말들은 무의미한 소음이 아니다. 세계가 이를테면 고유 명사가 가리키는 개별 사물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일반 명사와 관계어들이 어떻게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알기 힘들다. 플라톤의 논증을 용케 피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그의 논증은 언뜻 보기에 증거가 확실한 경우여서 보편자의 존재를 지지해 준다. (193)
결론을 말하자면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이데아 세상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신이 만든 이상적인 침대가 있다? 이런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죠. 하지만 개별자들을 묶어주는 보편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보편자 개념을 처음 언급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설명한 사람이 바로 플라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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