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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철학수업] 플라톤의 영혼 불멸설_소크라테스의 영혼 존재 증명 세 가지

설왕은31 2023. 12. 1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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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소크라테스의 논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그 대립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서로 대립물이기 때문에 삶에서 죽음이 나오고 죽음에서 삶이 나온다고 추론할 수 있다. 둘째, 인간이 가진 선천적 지식은 영혼의 선재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예로 든 것은 '같음'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절대적인 같음을 경험할 수 없지만 이것의 의미를 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영혼의 세계에서 이와 같은 지식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소크라테스는 주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소크라테스는 모든 지식은 상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즉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이미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전제를 두고 대화를 하고 철학을 가르쳤다. 

 

모든 지식이 상기라는 주장에 대한 논의는 '메논'에서 더 길게 펼쳐진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가르치지 않고 상기시킬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메논을 시켜서 노예 소년을 불러들인 다음 기하학 문제에 관한 질문을 함으로써 자신의 논점을 입증하겠다고 선언한다. 노예 소년이 이제까지 기하학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따른 소년의 대답은 실제로는 기하학을 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p.208

 

 

러셀은 소크라테스의 논증이 논리적으로 매우 허술하다고 지적한다. 일단 모든 지식이 상기라는 주장은 허물어지기 쉬운 주장이다. "모든"이라는 말 때문에 예외 사항 하나만 있어도 이 주장은 무너진다. 러셀은 경험으로 아는 지식의 경우에는 상기를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없다. 피라미드가 언제 지어졌는지 상기를 통해 알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 논리학이나 수학의 경우에는 상기라는 방법을 활용해 볼 수도 있지만 역사적인 사건과 같은 경우에 상기란 방법으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러셀은 '같음'에 대해서도 허점을 지적한다. 그는 우리가 절대적인 같음이라는 이상적인 지식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A와 B가 정확히 같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말은 절대적인 같음이라는 인식을 기반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 같은 판단은 선험적 인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 분명하며 우리의 영혼이 전생에서 초감각적 능력이 있다면 지금도 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을 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한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영원 불멸하다는 주장에 또 다른 근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영혼이 순수한 것이어서 분해되지 않고 영원히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에도 철학에서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주장이었다. 복합체만이 분해될 수 있고 세상을 이루는 기본 구성 요소는 복합체가 아니기 때문에 변화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순 존재에는 시작도 끝도 없고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이제 본질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예컨대 절대 미는 언제나 동일성을 유지하지만 아름다운 사물들은 계속 변화한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사물은 잠시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은 영원히 존재한다. 육체는 눈에 보이지만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사물 가운데 하나로 분류해야 한다. (p.209-210)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육체의 감각에 의해 훼방을 받기 때문에 술주정뱅이와 같은 상태가 된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철학자가 된다면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지혜의 상태에 이를 수 있고 죽음 이후에는 영혼의 세계에 들어가 신과 함께 머물 수 있다고 보았다. 신과 함께 머무는 세상은 천국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육체의 욕망을 따라 더럽혀진 영혼은 세상에 떠돌거나 동물의 육체로 들어가게 되고 철학자는 아니지만 일정한 덕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벌이나 개미 또는 군집 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진정한 철학자만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

 

영혼이란 단지 육체에 붙잡혔거나 달라붙었다고 의식하기 때문에, 영혼은 철학을 받아들일 때까지는 실재하는 존재를 감옥의 창살을 통해서 볼 뿐 자신 안에서 자신을 통해서 보지는 못하며...... 정욕으로 말미암아 영혼은 제일가는 공범자로서 포로 신세가 된다. (210-211)

 

 

소크라테스의 이론이 아주 정교하게 제시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이런저런 그럴듯한 말들을 했고 그 자신이 정리한 것이 아니라 플라톤이 정리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논리성을 재고하는 것은 플라톤의 역할도 아니었다. 만약 소크라테스 자신이 책을 썼다면 좀 더 정리된 이론을 만들었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착한 영혼은 천국에, 나쁜 영혼은 지옥에,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영혼은 연옥에 간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 갚아주겠나?"라고 한다. 사람들은 병이 들었다가 회복되면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바쳤는데, 소크라테스는 발작성 열병에서 회복된 적이 있는데 닭을 바치지 않았던 적이 있어서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최고로 지혜롭고 정의롭고 선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러셀의 평가는 매우 박하다. 러셀은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를 보면 점잔 빼고 겉으로만 감동을 주는, 나쁜 성직자의 전형이 떠오르기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앞두고 보여준 용기는 신들의 회합에 합류하여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누리리라고 믿지 않았더라면 더욱 비범해 보였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전의 몇몇 철학자들과 달리 사고가 과학적이지 않고 우주가 자신의 윤리적 기준과 일치한다고 증명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이것은 진리를 배반하는 태도이며, 철학자가 저지르는 가장 큰 죄이다. (212)

 

 

러셀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논리적이지 않고 천국이라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소크라테스의 사고가 과학적이지 않고 자신의 윤리적 기준에 따라서 우주의 실상을 왜곡했다고 하는데 그의 기준에 있어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러셀이 말하는 '과학적'이라고 하는 것은 유물론적, 실증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 철학이 유물론적, 실증주의적 토대 위에서 쌓아져야 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꼭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고 싶다. 과학도 전제와 믿음 위에서 실행되는 것이다. 러셀이 20세기 초반에 왕성하게 활동했기 때문에 고전 물리학적 유물론적 경향이 강했고 그의 기준에서는 소크라테스는 비판받아 마땅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영혼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이론도 허술한 면이 많다. 그렇다면 러셀은 영혼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물론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영혼은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증명할 수 없으니까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아마도 소크라테스의 증명 방법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러셀이 소크라테스를 이렇게 헐뜯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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