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러셀서양철학사

[러셀철학수업] 플라톤의 우주론_중세 유럽인의 우주 교과서

설왕은31 2024. 1. 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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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티마이오스'는 그의 우주론을 담고 있는 책이다. 러셀의 설명에 따르면 신플라톤주의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부터 중세까지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보다도 티마이오스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고 한다. 나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영어로 된 티마이오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적이 있다. 플라톤의 책 중 유명한 것은 대충 읽어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영어로 읽어본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수업 시간 중 교재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읽었는데, 아마도 플라톤의 다른 책보다 서양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책이기 때문에 교재로 선정되었던 것 같다. 러셀도 '티마이오스'는 철학으로서는 중요하지 않지만 영향력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티마이오스에서 피타고라스 학파 출신의 천문학자인 티마이오스가 인간 창조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역사를 설명한다. 러셀이 티마이오스를 요약한 내용 중 흥미로운 것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감각 가능한 세계는 영원하지 않으며, 신이 창조한 세계임이 틀림없다. 신은 선하기 때문에 영원한 존재의 원형에 따라 세계를 만들었다... 플라톤의 신은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의 신과 달리 무에서 세계를 창조하지 않고 이전에 존재하던 물질을 재배열했을 따름이다...세계는 하나일 뿐, 소크라테스 이전 많은 사상가들이 가르친 바와 달리 세계가 여럿 존재하지는 않는다. 세계가 하나 이상 존재하는 못하는 까닭은 신이 파악한 영원한 원본과 가능한 한 일치하게 설계하며 창조한, 모사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214)

 

 

플라톤의 서술은 논리적인 측면에서 허점이 많이 있다. 따라서 그 허점을 파고 들어가면 한도 끝고 없다. 티마이오스에서 어떤 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지만 살펴보면 된다. 그것이 맞냐 틀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대와 중세 유럽인들이 플라톤이 설명한 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티마이오스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감각이 일시적인 것으로 감각할 수 있는 이 세상도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래서 신이 창조한 세계라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상은 불완전한 곳인데 완전한 모델을 따라 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고 무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신이 물질을 정리한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점에서 신은 물질이 가진 본질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재밌는 것은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세계가 여러 개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믿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멀티버스 개념이 20세기에나 등장한 것인 줄 알았는데 2500년 전 사람들도 이미 그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니 흥미롭다. 

 

티마이오스는 어떻게 시간이 생겼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했는데 러셀이 인용한 내용의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조물주는 원본이 영원하듯 우주를 가능한 한 영원한 존재로 만들려 했다. 그런데 이상적인 존재의 본성은 영원성을 지녔으나, 영원한 속성을 완전하게 피조물에게 부여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조물주는 움직이는 영원한 영상image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하늘을 질서정연하게 정돈할 때 수적인 비례에 따라 움직이는 영원한 영상을 만들었으니 영원성 자체는 그대로 불변한다. 이렇게 움직이지만 불변하는 영상을 시간이라 부른다. (215)

 

 

 

 

그 당시의 우주에 대한 지식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하늘과 시간이 동시에 창조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티마이오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비슷하다. 물론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설픈 논리가 보이지만 대략의 설명은 현대 과학의 설명과 유사하다. 

 

티마이오스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많이 있다. 조물주가 별마다 영혼을 하나씩 만들어 주었다는 식의 내용도 있고 사람이 잘 살면 죽은 다음에 자신의 별에 가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다음 생에는 지구에 태어날 수도 있고 달에 태어날 수도 있고 별에 태어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쁘게 살면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나거나 새와 같은 짐승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알아낼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물론 사실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여자가 받는 대우가 매우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자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인간에게 형벌이라고 생각될 정도라니 여성의 인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던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티마이오스는 피타고라스 학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수학에 관심이 많이 있었고 우주의 생성에 대해서 기하학과 같은 수학적 원리를 적용해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정다면체 이론은 플라톤 시대에 최신 발견에 속했다고 한다. 정다면체가 다섯 개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혀 냈고, 플라톤은 우주가 구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어떤 곳에서는 정십이면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하냐고 따지면 끝이 없다. 그냥 이런저런 주장들을 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영혼에 대해서도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티마이오스는 인간이 두 가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죽지 않는 영혼이고 다른 하나는 죽는 영혼이라고 말한다. 죽지 않는 영혼은 머리에 있고 죽는 영혼은 가슴에 있다고 위치도 지정해 준다. 

 

죽지 않는 영혼은 조물주가 창조했고 죽는 영혼은 신들이 창조했다. 죽는 영혼은 억제하기 힘든 가혹한 애착들, 첫째로 악행을 쉽게 저지르게 하는 쾌락, 다음으로 선행을 가로막는 고통, 또 성급함과 두려움이라는 어리석은 조언자와 좀처럼 달래기 어려운 분노, 쉽게 길을 잃고 마는 희망의 지배를 받는데, 신들은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이러한 애착들을 비이성적인 감각이나 모든 걸 감수하는 사랑과 섞어서 인간을 만들었다. (218-219)

 

 

티마이오스에는 황당한 내용이 많다. 논리적으로 따져서 모순을 찾아낼 것이 아니라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에 사는 사람들이 이 책에 꽤 많은 영향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안다면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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