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왕은 박사의 신학 수업
* 교재: 다니엘 밀리오리의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
6. 하나님의 섭리와 악의 신비
6.2. 신학 전통에서 섭리와 악 (p. 223-229)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의 주장
신정론의 문제에 대한 세 가지 대답
밀리오리는 전통적인 신학에서 섭리와 악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언급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이 섭리와 악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설명했는지 지적하고 전통적인 섭리론에서 신정론의 문제에 어떤 대답을 했는지 세 가지로 제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지만 그것은 개인의 삶을 통해 활동하고 역사 안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하나님의 뜻은 강압적으로 밖으로부터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결정을 통해서 실행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악은 하나님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피조물이 자신의 자유를 오용한 결과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악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 악의 문제에 대한 책임은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피조물의 잘못된 선택으로 발생한 악을 선으로 바꾸는 일까지 하시는 분이다.
칼뱅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비밀스런 계획에 의해 통치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발생한 것이며 그의 주권을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악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칼뱅은 제일원인과 제이원인을 나눔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 하나님은 제일원인이기는 하지만 제이원인은 아니다. 밀리오리는 추상적으로 설명했지만 예를 들면 이렇다. 예를 들어 제일원인은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원하신다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날마다 술을 마신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그 사람이 알콜중독에 걸렸다면 알콜중독이라는 악의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행동이 제이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원하신다는 제일원인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구분은 다소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밀리오리가 인용한 칼뱅의 말은 기억할 만하다.
"일의 결과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 것에 감사하는 것, 역경 속에서 인내하는 것, 그리고 미래에 대한 근심으로부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유한 것, 이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섭리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나온다." (225)
밀리오리는 전통적인 섭리론에서 신정론의 문제에 대한 세 가지의 답을 정리한다.
1. 신정론은 하나님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불가해성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 말 자체가 어려워서 그냥 이해할 수 없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하나님의 처벌이나 징계로 해석하기도 한다.
3. 또는 하나님의 교육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답은 2번이다. 물론 고난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하나님의 처벌이나 징계로 보는 예가 성경에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을 근거로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때 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수많은 사람이 자기의 관점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서술한 것으로 그 모든 내용에 동등한 무게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밀리오리는 2번의 주장에 대하여 예수가 이의를 제기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예수는 이 점에 대해 분명한 이의를 제기했다. 예수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에 대해 이는 자기 죄 때문도,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라고 선언했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여 죽은 사람들도 그들의 특별한 악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고통과 악을 하나님의 처벌로 이해하는 신정론은 종종 희생자를 너무 쉽게 비난하며 가해자와 과실을 간과한다. (227)
1번의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음은 전통적인 신정론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주장이다.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똑같은 원리로 악의 문제도 이해할 수 없음을 말한다. 밀리오리는 이것이 바로 욥기에서 주장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보다 훨씬 위대하며 그의 섭리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밀리오리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반항이다. 침묵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대들면서 반항하는 방법이 있다. 밀리오리는 후자의 방법을 선호한다. 욥이 그렇게 하나님께 대항함으로써 오히려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3번도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고통스러운 일을 통해서 우리는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말 밀리오리는 3번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고난이 선하다는 명제를 도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결국 전통적인 신정론에 따르면, 악의 문제에 대하여 인간이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유한성을 인정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서 고난을 견뎌내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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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비유로 풀어 본 사랑 이야기 "사랑해설"(설왕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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