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는 속죄론의 원리를 여섯 가지로 제시합니다. 하나씩 열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고요. 틸리히가 속죄론의 원리를 제시한 것을 읽어보면서 느낀 것은 역시 '속죄'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속죄는 죄를 속한다는 말인데 죄를 속하는 것은 주로 그에 대한 벌을 받거나 돈을 지불하거나 선행을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의미합니다. 속죄는 죄와 깊은 관련이 있는 단어인데 실제로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말하는 속죄는 이런 식의 죄와 벌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어 단어 atonement의 어원적 의미에 기반을 둔 '화해'나 '하나 되기'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틸리히는 속죄론의 첫 번째 원리는 다음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가장 결정적인 첫 번째 원리는, 속죄의 과정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창조된다는 것이다. (265)
여기서 틸리히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속죄의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인해서 속죄가 이루어진 것이라면 속죄의 주체는 예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살지 않았다면 또는 이 세상에서 살았더라도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았다면 속죄가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틸리히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속죄의 주체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속죄라는 말보다는 화해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화해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그렇다면 예수가 이 땅에 오기 전에도 이미 화해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이 속죄라고 부르는 사건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atonement는 더 넓은 범위에서 이해해야 하지만 초점을 최대한 좁히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넓히면 예수의 삶 전체로 볼 수 있고 더 넓게 보면 예수의 탄생 이전과 예수의 죽음 이후까지 모두 포함할 수 있습니다. 속죄를 예수의 삶 전체로 본다면 속죄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틸리히가 말하는 속죄의 네 번째 원리입니다.
속죄론의 네 번째 원리는 하나님의 속죄의 활동이 실존적인 소외와 그의 자기 파괴적인 결과들에 대한 그의 참여로서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266)
달리 말하면 속죄는 소외라는 인간 실존에 대한 신의 참여를 의미합니다. 예수의 삶 자체가 속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틸리히는 속죄의 다섯 번째 원리에서 소외에 대한 하나님의 참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났다고 주장합니다. 이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속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능하게 된 것이 아니라 명료하게 밝혀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영어로는 becomes possible이 아니라 becomes manifest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속죄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의 의미는 십자가 없이는 속죄가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becomes manifest는 하나님의 화해가 예수의 십자가로 인해서 명백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속죄론의 여섯 번째 원리는 인간들 또한 그리스도로서 예수의 존재인 새로운 존재에 대한 참여를 통해서 하나님의 속죄 행위의 나타남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268)
속죄는 소외라는 인간 실존에 대한 신의 참여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신의 참여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해라는 말을 통해서 다시 정리해보면 화해는 두 방향에서 일어납니다. 하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신의 참여이고 다른 하나는 신의 참여에 대한 인간의 참여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에 대해 예수가 대신 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참여"라고 틸리히는 주장합니다. 그래서 틸리히는 대리적인 고난 substitutional suffering이라는 말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가 고난을 당한 것은 인간 실존에 참여해서 소외를 극복하는 과정에 생긴 일이지 화해를 위해서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했던 일은 아니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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