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주 꺼내 들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구원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구원을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구원이라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다양합니다. 사람마다 다른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대해서 긴 대화를 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늘 이야기하고 사랑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고 배워가는 것처럼 구원에 대해서도 같은 자세를 취하면 좋습니다.
틸리히는 구원을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세 가지밖에 없을까요? 아마 훨씬 더 많은 측면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가장 주요하게 세 가지 측면을 거론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리했을 것입니다. 그 세 가지 측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원은 새로운 존재에 대한 참여이다. (중생)
2. 구원은 새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다. (칭의)
3. 구원은 새로운 존재로서 변화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성화)
먼저 새로운 존재에 대한 참여부터 살펴보죠. 새로운 존재에 대한 참여는 인간의 반응을 통한 참여를 뜻할 수도 있지만 틸리히는 먼저 객관적인 상태에 대해서 말합니다. 참여하려면 일단 그 안에 소속이 되어야 하는데 소속이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 대표팀 경기에 뛰려면 일단 대표팀에 선발이 되어서 그 안에 소속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경기에 참여할 수 있죠. 틸리히가 말하는 '중생'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에게 생긴 새로운 신분을 의미합니다.
이 관계는 '사로잡아 자신 안으로 이끌어 들어감'을 뜻하며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 안에 있음'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틸리히 조직신학 III, 269)
중생은 그리스도가 가져온 만물의 새로운 상태, 새로운 시대이다... 새로운 존재의 객관적인 실재가 새로운 존재에 대한 주관적인 참여보다 선행한다. (틸리히 조직신학 III, 270)
즉 여기서 말하는 중생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에게 생긴 새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상태에서 새로운 존재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이죠.
두 번째로 새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칭의도 객관적인 칭의가 있고 주관적인 칭의가 있습니다. 객관적인 칭의가 우선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칭하는 것이 먼저 객관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의롭다 칭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주관적인 칭의입니다. 틸리히는 칭의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그러나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객관적 칭의보다도 주관적 칭의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주관적 칭의는 자신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것이 쉽지 않다고 틸리히는 말합니다.
자신이 받아들여져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구원의 역설이며, 이 역설이 없다면 어떠한 구원도 있을 수 없고 단지 절망만 있을 것이다. (틸리히 조직신학 III, 273)
이것을 거론하면서 틸리히는 "은혜의 의한 믿음을 통한 칭의"Justification by Grace through Faith를 강조합니다. 이 말은 "믿음에 의한 칭의"라는 말로 짧게 표현되곤 했는데 이는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칭의는 하나님 은혜의 사건이지 믿음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죠. 그런데 믿음에 의한 칭의는 칭의를 위해서 믿음을 강요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성화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존재가 된 자들이 그리스도로부터 힘을 받아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화는 새로운 존재의 힘이 교회의 안과 밖에 있는 개인들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틸리히 조직신학 III, 274)
조금 더 쉽게 말하면 구원은 변화된 삶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변화된 삶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틸리히의 그리스도론은 끝났습니다. 틸리히는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는 이전의 모든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난 그의 결정적인 나타남을 예비해 온 새로운 존재의 힘이요 동시에 그 이후의 모든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로서의 자신을 실현해 가는 새로운 존재의 힘이다. (틸리히 조직신학 III, 274)
그러니까 틸리히의 그리스도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수는 새로운 존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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