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목이 마르면
본문: 요한복음 7:37-39
일시: 2023년 5월 28일 오전 11시 (성령강림주일, 웨슬리회심주일)
장소: 분당 성화감리교회
본문
(요 7:37-39, 개정)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들어가는 말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오늘 예배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의 강이 넘쳐 흐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은 비가 오면 안 되는 날인데 비가 어제부터 너무 많이 오네요. 진짜 오래간만에 예배 후에 야외 활동을 하기로 했는데 장마처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걸까? 아무래도 오늘 본문 말씀을 잘못 선택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것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맞추어서 날씨를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야외로 못 나가서 아쉽지만, 생수의 강과 관련된 설교를 들을 때 비가 참 많이도 왔다는 것을 기억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문 설명
요한복음 7장 37절에 보면 명절 끝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명절은 초막절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3대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유대인의 3대 절기 중에 하나이고 시기상으로 우리나라의 추석과 거의 겹칩니다. 9월 말과 10월 말 사이에 초막절이 있습니다. 날짜가 정확하지 않은 이유는 히브리 달력으로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은 유대인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사막에 머물 때 초막을 짓고 지냈던 시기를 기념하는 명절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의 추석과 같이 한 해 동안 거둔 곡식에 대해서 감사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초막절에 ‘초’와 추석의 ‘추’를 연결해서 초막절은 우리나라의 추석과 같다고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설날보다 추석에 더 풍성한 느낌을 가지고 지내는 것처럼 초막절은 곡식을 거둔 후에 지키는 절기이므로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마음도 푸근해지는 시기입니다. 초막절은 보통 7일 동안 지키고 마지막 날에는 큰 성회를 열어서 명절을 마무리합니다.
초막절에는 물을 따르는 의식을 합니다. 언제부터 물을 따르는 의식이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의식이었습니다. 물을 따르는 의식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해서 사막에 머물러 있을 때 집을 지을 수 없으니까 풀로 집을 지어 만든 시기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여러분, 사막에서 제일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막에 며칠 간 머문다면 또는 사막에 여행을 한다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물입니다. 사막은 물을 구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사람은 물을 마시지 못하면 금방 탈수 증상을 느끼고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333 생존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공기가 없이는 3분, 물이 없으면 3일, 음식이 없으면 3주 정도 생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막은 물이 정말로 필요한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물이 없어서 곤란한 시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만약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면 모든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사막에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사막에서 거주하다가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데 성공합니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물을 따르는 의식을 통해 사막에서 물을 공급하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냈습니다.
초막절에 물을 따르는 의식은 다음 해에 비가 적절하게 올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사막에서만 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평소에도 물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초막절은 곡물을 수확하고 난 이후에 지내는 절기이지만 동시에 다음 해의 농사를 바라보는 절기이도 합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초막절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한나님의 재앙이 임해서 비가 제대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14장) “사막에서도 물을 주셔서 우리의 생명을 지키셨던 하나님, 내년에도 우리에게 적절한 물을 공급해 주셔서 우리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라는 의미로 물을 따르는 의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초막절에 물을 따르는 의식은 아주 중요한 의식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서 예수님이 밑도 끝도 없이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외치신 것이 아닙니다. 초막절에 물을 따르는 의식이 매우 중요하게 거행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의식과 관련해서 목마른 사람이 있다면 자신에게 와서 물을 마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겠다고 약속한 물은 우리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는 물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진짜 물이 아니라 영적인 물입니다. 여기서 물은 성경을 의미하기도 하고 지혜를 의미하기도 하고 성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은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올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39절에 보면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친다는 말씀은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말씀하신다고 명시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이 꺼려지는 이유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했던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유대인의 3대 절기가 모두 관련을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생수의 강처럼 흘러 나올 성령에 대해 말씀하신 때가 바로 초막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절기가 유월절이었고 유월절 이후 50일이 지난 후에 지키는 절기가 바로 오순절입니다. 그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성령이 임했을 때 제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밝혀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오늘 본문이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배에서는 생수의 강이 흘러 나와야 합니다. 이 땅에 성령님이 이미 강림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임해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러한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생수의 강이 진짜 문자 그대로 물이 흐르는 강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배에서 물이 줄줄 나오면 사람이 아니죠. 사람에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탈수 증상으로 죽습니다. 비유로 해석해야 합니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간다는 말에서, 배는 욕구나 욕망을 뜻하고 생수의 강은 참된 만족, 또는 행복감, 기쁨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그런 만족, 행복, 기쁨이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긴가민가합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생수의 옹달샘 정도는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표현은 생수의 강입니다. 강이라고 한다면 졸졸졸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결이 출렁이면서 콸콸 물이 흘러나와야 할 텐데요. 생수의 강이 내 배에서 나온다면 다른 사람도 나로 인해서 만족, 행복, 기쁨을 느낄 수 있을 텐데 나는 과연 그런 사람인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면 아니거든요. (잡담)
‘나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지 않는 것일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과장되게 말씀하셨을까? 아니면 성경이 잘못된 것일까?’ 저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저와 비슷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서 학자들 중 이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는 예수님에게 와서 마시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생수의 강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이렇게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헬라어 본문에 쉼표의 위치 하나만 바꾸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결국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참된 만족, 행복, 기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목이 마르면
저는 오늘 본문을 읽고 묵상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상한 명령과 약속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이 마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을 마셔야 합니다. 집에서 목이 마르면 어떻게 합니까? 냉장고 문을 연다, 물병을 꺼낸다, 그리고 컵에다가 물을 따라 마신다, 간단하죠? 길을 걷다가 목이 마르면 어떻게 하십니까? 가지고 있는 물이 없다면 편의점에 가서 사서 마시면 됩니다. 목이 마른데,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예수님, 제가 목이 마릅니다. 물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면 예수님이 물을 주실까요? 안 주십니다.
물은 잘 와닿지가 않으니까 다른 것으로 바꾸어 봅시다. 물은 사람이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 하루도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사막이라면 아마 갈증이 더할 것입니다. 사막에서 물처럼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없으면 죽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물을 마시지 못해서 죽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없어서 죽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돈입니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라는 말씀을 이렇게 바꿔봅시다. 누구든지 돈이 없거든 내게로 와라. 사막에서 목이 마르다는 것은 곧 죽을 것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이 마르거든 내개로 오라는 말씀은 죽을 것 같은 위험에 처하거든 내게로 오라는 말씀입니다. 궁핍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내게로 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돈이 없는 사람에게 오라고 했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 왔다면 돈을 주어야 할 텐데, 예수님은 돈을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간단히 하면 이런 말씀입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나한테 와라, 내가 성령을 줄게.”
우리는 스스로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이유 또는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는 이유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또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생각에, 사람이 사람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간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양식도 주시고 햇빛도 주시고 비도 주시는 분입니다. 까마귀와 백합화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논리적으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염려하지 말라고 염려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염려가 되는 것을 어떡합니까. 당장에 다음 달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되는 것을 어떡합니까. 걱정이 될 때, 목이 마를 때, 돈이 없을 때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솔직하게 기도하면 됩니다. “예수님, 돈이 없습니다. 돈 좀 주세요.” 그러면 예수님이 돈을 벌 기회를 주실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물질적 빈곤 또는 육체적 연약함을 영적 성숙 또는 성화를 위한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마치 사막에서 물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막에서 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래서 정말 마음껏 물을 마신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참된 만족, 행복, 기쁨과는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목이 아주 마르다가 물을 한 모금 마시면 만족과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러한 기분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돈이 인생의 정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말에 잘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부자들의 배부른 소리라고 무시하거나 그들은 돈을 가지고 불행해졌지만 나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대부분 불행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다를 것이라고 꿈을 꿉니다. 그래서 영화배우 짐 캐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한 번 부자가 되어 보고 유명해져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게 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테니까요.”
이 말을 들으시고 “그래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자”고 마음먹으셨습니까? 아니면 “그래, 나도 부자가 되어서 그 깨달음을 얻고 싶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일단 부자가 되고 나서 부자가 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 다음에 답을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겠죠? 그런데 부자이면서 삶에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며 지혜롭고 겸손하고 인격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가난하고 미천한 지위에 있을 때는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변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왜 그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가 짐작을 한 번 해봤습니다. 제가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저는 부자가 되면 매우 바쁠 것 같습니다. 돈을 써야 하거든요. 좋은 환경에 있는 더 큰 집도 사야 하고 고급차도 사야 하고 예쁜 가방도 사야 하고 옷도 많이 사야 하고 세계 방방곡곡으로 여행도 가야 합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답을 찾아볼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복받는 부자가 되는 방법
그래서 저는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팔복의 첫 번째,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그리고 영생을 얻고자 하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가진 것을 다 나누어 주고 와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어떻습니까? 풍년이 되어서 수확물을 많이 거두어들이자 창고를 넓힐 계획을 세운 부자의 생명을 오늘밤 취하겠다는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자가 되면 절대로 안 될까요? 오늘 진짜 잘 오셨습니다. 부자로 살면서도 천국을 소유하고 영생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답을 얻고 나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에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만족, 행복, 기쁨이 하나님께 있다는 진리 안에 머물고 있다면 돈이 우리를 나쁘게 만들지 못합니다. 당장에 돈이 필요한데 성령을 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물질적 빈곤 또는 육체적 연약함을 영적 성숙 또는 성화를 위한 기회로 삼으십시오. 목이 마를 때마다 예수님께로 가서 물을 달라고 하십시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삶이 궁핍할 때마다 위험에 몰릴 때마다 무작정 나가서 돈을 벌지 마시고,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실천하십시오. 성령님이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답을 얻어서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면 그 다음은 부자가 되든 되지 않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자가 안되어도 충분히 만족과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고 부자가 되어도 그러한 만족과 기쁨과 행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는 말
사랑하는 성화 교회 가족 여러분,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 전에 먼저 성령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여러분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길 바랍니다. 저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싶은 분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목사님, 부자가 되는 것보다 성령을 받는 것이 더 어려운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목이 마르면 자신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돈이 없어서 못 살 것 같으면 육체적 연약함으로 인해서 죽을 것 같으면 자신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궁핍함과 연약함은 기회입니다. 정답을 향해 접근해 갈 수 있는 시간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기회로 삼아서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가서 고상한 기도를 하지 마시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달라고 돈을 필요하다고 말씀하십시오. 이 말씀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눅 11:11-13, 개정)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생선을 달라고 알을 달라고 기도하면 무엇을 주신다고요? 성령입니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목이 마르면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은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올 곳을 향해 길을 트는 작업과 같습니다. 목마를 때마다 한 삽씩 파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래오래 기도하며 예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성령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콸콸콸 터져 나오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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