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왕은 박사의 신학 수업
* 교재: 다니엘 밀리오리의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
6. 하나님의 섭리와 악의 신비
6.1. 섭리 신앙과 악의 실재 (p. 216-223)
세상에는 신의 섭리가 작동한다.
세상에는 악이 실제로 존재한다.
밀리오리는 섭리 신앙과 악의 실재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할 때 자신 없는 소리를 합니다. '사상 체계'를 세우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이죠. 악의 문제에 대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이론 체계를 세우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악의 문제에 대해서 신의 섭리로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그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고 견고한 체계를 억지로 구축한다면 그것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밀리오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상 체계는 실제로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척함으로써, 신앙과의 접촉점과 생활 실재와의 접촉점을 모두 상실하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236)
이렇게 멋있게 말하지만, 사실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악의 문제에 대하여 무릎을 탁 칠 만한 답안은 없습니다. 칼 바르트가 말한 대로 신학은 "조각조각 쪼개어진 사고"에 불과해서 답을 주지 못하는 문제가 허다합니다. 밀리오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신학자들의 주장은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이 그냥 우연히 막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내버려 둔 이신론의 하나님이 아니라 신은 지금도 세상에 개입하고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이끌고 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죠. 밀리오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63)을 이용해 섭리를 "하나님의 전능하고 항존적인 권능"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 이 세상을 지탱하고 통치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좀 더 간단히 말하면 섭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계속 지탱하고 통치한다는 이론입니다. 그렇다고 믿을 수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악의 실재입니다.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합니다.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악이 제거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20세기 초에 일어난 세계대전은 진보적 역사관에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를 날려 버렸습니다.
밀리오리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이처럼 끔찍한 악에 직면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을 계속 긍정할 수 있는가? (218)
악의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전제 때문에 발생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전능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선하다는 것입니다. 전능하고 선한 하나님이 왜 악의 문제를 그냥 놓아두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부인하면 악의 문제는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지 않든가 아니면 하나님이 선하지 않든가 둘 중에 하나가 성립하면 악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됩니다. 그러나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밀리오리는 악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자연 악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 악입니다. 이 구분은 명료하고 유용해 보입니다.
자연 악은 자연 속에서 그냥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는 고통스러운 사건입니다. 지진이 대표적인 자연 악입니다. 그 외에 질병, 홍수, 산불도 자연 악입니다. 제가 볼 때 지진의 예가 가장 좋습니다. 지진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재해입니다. 질병이나 홍수, 산불은 어떤 잘못으로 인해서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 악을 거론하면서 밀리오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지적을 합니다. 인간의 죽음과 노화를 악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노화는 인간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 자체를 악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모든 피조된 존재에게 한계성과 위험성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편협하며 근거 없는 생각이다. 유한성과 필멸성은 하나님이 창조한 삶의 그늘진 곳을 구성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본질적으로 악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219)
밀리오리는 자연의 영역이 아닌 인간 역사의 영역에서 발생한 악에 대해서도 거론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홀로코스트를 들 수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에 의해 6백만의 유대인이 죽은 사건을 말합니다. 홀로코스트는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증오심이었습니다. 그래서 홀로코스트는 악마적인 성격을 띤 악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밀리오리는 엘리 위젤의 '나이트'와 시몬 베이유의 '신을 기다리며'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홀로코스트의 잔혹한 악마성을 지적합니다.
무엇보다 고통이 힘든 것은, "고통은 한동안 하나님이 부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부재하는 듯한, 또는 하나님이 죽으신 듯한 경험은 철저한 악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22)
밀리오리는 이 부분에서 두 가지 충돌하는 사실을 그냥 내어놓습니다. 세상에는 신의 섭리가 작동한다, 그리고 악은 실제로 존재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조화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부정하지 않고 두 가지 모두 긍정합니다. 그렇다면 이 다음 부분에서는 이 모순을 해결하려고 시도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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