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폴 틸리히: 그리스도론

[틸리히조직신학3_142-146] 40.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역설

설왕은31 2021. 11. 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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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가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닙니다. 단순한 사실이 아닌 역설이라고 강조합니다. 틸리히가 말하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역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났다." (142)
"The New Being has appeared in Jesus as the Christ."

 

좀 더 쉬운 번역으로 "새로운 존재가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로서 나타났다"로 옮길 수 있다. 틸리히는 이 주장이 역설이며 그리스도교의 모든 주장을 포함하는 역설이라고 말합니다. 틸리히는 이 사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며, 반성적인 합리도 아니며 변증법적인 합리도 아니고 비합리도 아니고 부조리도 아니고 무의미도 아니라 역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역설의 의미가 중요하겠죠. 역설은 문자 그대로 하면 '설'에 '역'하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거스를 역'에 '말씀 설'을 씁니다. 말씀을 거스른다는 뜻인데 여기서 말씀은 이론이나 생각, 의견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 보편적이라는 말을 넣으면 더 좋겠네요. 보편적 이론, 생각, 의견을 말합니다. 이것을 거스르는 것이 역설입니다. 영어로는 paradox입니다. Para의 의미는 반대의 contrary 또는 구분되는 distinct 라는 의미입니다. Doxa는 보편적인 믿음, 널리 알려진 의견입니다. 그러니까 paradox의 뜻은 보편적인 믿음이나 널리 알려진 의견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Paradox는 doxa에 충돌하는 것이죠. 

 

다음 사전을 찾아보면 역설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1) (기본의미) 자체의 주장이나 이론을 스스로 거역하는 논설. 또는 그 현상. (참고어) 이율배반
(2) [문학]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히 모순되고 부조리하지만, 그 속에 진실을 담고 있는 표현. (참고어) 패러독스
(3) [논리] 일반적으로 인정된 근본 명제들과 대립되는 주장.

 

틸리히가 말하는 역설은 이 세 가지 중에서 3번에 가깝습니다. 2번에 참고어로 패러독스라고 나와서 틸리히가 말하는 역설과 가장 가까운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닙니다. (2) 번 설명에서 예를 든 어구가 "북극곰의 소리 없는 아우성"인데 여기서 "소리 없다"와 "아우성"이 서로 충돌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소리가 없으면 아우성이 될 수 없고 아우성이 된다면 소리가 없을 수가 없죠. 그런데 내용이 분명히 모순이고 논리로는 맞지 않는데 이렇게 서로 충돌하는 표현을 함으로써 더 강력하게 진실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특별히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예수이면 그리스도일 수 없고, 그리스도이면 예수일 수 없다는 식의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문학에서는 패러독스가 역설이지만 문학에서 말하는 역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문학에서 말하는 역설은 일단 말이 안 되어야 하는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말이 안 되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3번에 가깝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을 하나의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고 진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주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틸리히가 말하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역설에서 역설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명제, 이론, 생각과 부딪치는 사실'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틸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주장은 인간의 자기이해나 기대들과 반대되는 것이다. 역설은 새로운 현실이지 논리적인 수수께끼가 아니다. (146)

 

즉,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우리의 기대와 생각과는 완전히 충돌하는 새로운 현실입니다. 뜻밖의 현실이라고 할까요?그래서 틸리히는 이것은 "새로운 현실"(a new reality)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비합리, 불합리, 부조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참 쉽죠?

 

예수는 그리스도다.

그런데, 이것은 역설이다.

즉, 뜻밖의 사건이고 현실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다"라는 말은 역설, 즉 우리의 기대와는 매우 다른 뜻밖의 현실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설은 인간의 실존적 곤경으로부터 유래된 보편적 믿음이나 대중적인 의견과 모순되고, 이 실존적인 곤경에 근거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대들과 모순된다. (145, 내가 좀 다르게 번역)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뜻밖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예수도 실존적 존재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고 짐작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이 있는데 이것과는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존재이고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부를 만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말입니다. 소외라는 인간의 실존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보편적 믿음이나 대중적인 의견은 무엇일까요?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인간의 확고한 신뢰, 그의 자기 구원의 시도들, 절망으로의 그의 체념에 대한 위반이다... 실존의 조건들 아래에서의 새로운 존재의 나타남은 기독교 메시지의 역설이다. (145)

 

인간은 소외된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스스로 구원받으려고 시도하며 결국 절망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 정상인데 예수는 여기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라는 사실은 역설이라는 말입니다. 뜻밖의 현실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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