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미래를 알고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O, X 문제가 어려운데요. O일 수도 있고 X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질문을 좀 더 섬세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과정신학의 주장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질문을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알고 있습니까, 모르고 있습니까? 양쪽 다 근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미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죠. 여러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을 보면 그렇죠. 예언이라는 의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아는 예언, 즉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혹은 왕에게 경고를 하거나 조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미래를 모른다면 예언자들이 어떻게 미래를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식의 근거를 댈 수 있겠죠. 이런 믿음이 있으니까 요새도 예언 기도를 받으러 가시는 분들이 있겠죠. 그 외에도 하나님이 미래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전지하다고 하면 또 그럴 수 있죠. 전지는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데 미래를 모르면 전지하다고 할 수 없죠.
반대로 하나님은 미래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이거는 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죄를 지었죠. 그런데 하나님이 미래를 알고 있었다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줄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선악과를 에덴 동산에 두었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가 잘못된 선택을 할 줄 알면서도 선악과를 두었다는 것인데 이런 하나님을 좋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치 엄마, 아빠가 말썽꾸러기 반항아인 청소년 아들에게 총을 사준 것과 같습니다. 그 총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뻔히 알면서도 청소년 아들에게 총을 사주었다면 그 아들이 사고친 것에 대해 부모의 책임이 크지 않겠습니까?
과정신학은 하나님이 미래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소극적인 이유로는 만약에 하나님이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은 모든 일의 원인이고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요. 적극적인 이유로는 모든 존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과정신학은 모든 존재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을 기본 명제로 삼고 있다는 것은 과정신학의 가장 핵심적 주장입니다.
과정신학의 신론은 고전 신론과 차이가 있습니다. 고전 신론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기본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고전 신론에서는 하나님은 지배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그 다스림의 영역은 어떤 것은 다스리고 어떤 것은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죠.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의 제일 큰 문제는 악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이 원인이거나 혹은 하나님의 힘 아래에서 조정된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의 원인 혹은 배후조종자를 하나님으로 지목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과정신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영역에서 모든 사건을 통해 모든 존재를 다스리지 않습니다.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정신학에 따르면 하나님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단정적으로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미래를 모르고 모든 존재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확대하면 우주의 역사는 자기 멋대로 진행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우주의 역사를 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극단적 진화론자는 우주의 방향성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우주 역사의 방향성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방향성은 대체로 파악이 되지만 각각의 존재의 개별 사건에 대해서 하나님이 구체적인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과정신학의 주장은 제가 볼 때 타당한 근거를 여러 가지 제시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이런 것이죠. 하나님과 가위바위보를 하면 이길 수 있을까요? 과정신학에 따르면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가위, 바위, 보 중에 무엇을 낼 것인지 결정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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