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에 따르면 예수는 인간의 유한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 실존의 상태인 소외를 극복한 새로운 존재였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도 그다지 명확한 표현은 아닌데요. 틸리히는 예수를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관계성 속에서 소외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사람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틸리히가 말한 소외의 문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근거로부터 소외
둘째, 자기 높임(휘브리스)로서의 소외
셋째, 욕망으로서 소외
그렇다면 예수가 극복한 것은 바로 이 세 가지 소외입니다.
첫째, 예수는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틸리히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조차도 하나님께 왜 자기를 버렸냐고 항변했던 것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던 증거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과 관계가 틀어졌다면 위급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그 사람과의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겠죠. 틸리히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예수는 자기 높임을 시도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도 제자들이 그를 그리스도라고 불렀을 때도 그는 그것을 자기 높임의 기회로 삼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죽음의 수용과 연결시켰습니다. 죽어야 하는 메시야를 말했습니다.
셋째, 그는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을 때였습니다. 사탄은 예수의 욕망을 일깨우려고 했습니다. 예수가 원했다면 사탄의 요구는 예수가 모두 실행에 옮길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지만 만일 그랬다면 그는 악마가 되었을 것이고, 그리스도이기를 중단했을 것이다." (조직신학 3, 197)
틸리히는 예수의 무죄성이라는 말이 너무 약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단지 죄가 없다라고 말하기는 너무 소극적인 표현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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