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권의 핵심 문제
슈미트는 주권의 정의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 없습니다. 보댕으로부터 주권 개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개념은 계속 심화 발전되어왔지만 그다지 괄목한 것은 아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언제나 여러 가지 변용을 겪으면서도 낡은 정의가 반복된 셈이다. 즉 주권은 지고의, 법적으로 독립된, 다른 무언가로부터 연역 불가능한 권력이라는 정의가 말이다. (슈미트, 정치신학, 31)
슈미트는 주권이라는 최대 권력은 정치적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실상의 최고 권력과 법적인 최고 권력을 결합시키는 것이 주권 개념의 핵심 문제이다. (32)
지고의, 궁극의 권력을 정치 현실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실상의 최고 권력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슈미트는 그 최고 권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법적인 최고 권력 주위에서 사실상의 최고 권력을 누리고 있는 존재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이 주권 개념의 핵심 문제라고 말합니다.
슈미트는 켈젠, 크라베, 볼첸도르프의 국가론과 홉스의 국가론을 견주어 봅니다. 슈미트는 홉스의 견해에 동의하고 켈젠, 크라베, 볼첸도르프의 주장에는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홉스는 권위가 법을 만든다는 인격주의의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홉스는 영적 권력과 국가 권력을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주 단순하게 해석을 합니다. 영적 권력이나 국가 권력이나 모두 그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어느 쪽 권력이 한 단계 위라는 말은 권력의 속성에 따른 문제가 아닌 한쪽이 다른 쪽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해석했다고 슈미트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결단주의적 유형의 고전적 대변자는 홉스이다. 다른 쪽 유형이 아니라 그가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률을 만든다"라는 대립의 고전적 정식화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이 결단주의적 유형의 특성에 비춰 봤을 때 자명한 일이라 할 수 있다. (50)
법에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 자가 주권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고,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자가 주권을 가진 자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일까요? 입법, 행정, 사법 모두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인격주의 관점에서 주권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주권자는 입법, 행정, 사법에 관련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켈젠, 크라베, 볼첸도르프는 사람이 주권자가 아니라 법이 주권자라고 주장합니다. 국가가 아니라 법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국가의 임무는 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국가 자체가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헷갈리는 일입니다. 국가가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이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법이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기대어서 국가가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요?
즉 양자는 인간 공동생활의 두 가지 독자적 요소이며 한쪽 없이 다른 한쪽을 생각할 수 없지만, 어느 쪽도 다른 한쪽에 의존하거나 혹은 다른 한쪽에 앞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래서 법과 권력은 서로 합치하는 경향이 있는 것인데, 이러한 합치가 없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긴장상태'가 이로써 제거된다. (40)
켈젠, 크라베, 볼첸도르프는 법이 권위를 가지고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슈미트는 이에 대해 반대합니다. 슈미트는 인격주의 관점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홉스의 견해를 옹호하고 칭찬합니다.
이 현대 국가론의 노력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형식이 주관으로부터 객관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 (45)
18세기는 이성의 시대였고 그런 경향은 19세기까지 이어집니다. 물론 낭만주의와 같은 반대급부가 있기는 했지만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이성과 객관이 대접을 받는 시대였기 때문에 19세기와 20세기 초의 국가론은 주관보다는 객관의 관점이 더 주목받고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20세기는 또 달라졌죠. 주관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슈미트의 정치신학이 계속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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