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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노트] '종교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

자유는 중요한 덕목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 항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이 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유는 종교의 자유일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믿을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인간이 가진 제일 중요한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가 다 똑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녁 식사로 짜장면을 먹을지 아니면 짬뽕을 먹을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자신의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같은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죠. 저는 사실 종교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왜 그것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이클 샌델이 쓴 "자유의 한계"라는 책에서 샌델은 종교적 자유권에 대해서 거..

신학노트 2022.02.14

[1분말씀] 시편 139:16_있기도 전에

(시 139:16, 개정)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이번 주에는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길에 쌓여서 단단하게 붙어 있던 얼음들이 거의 녹았습니다. 이제 봄이 오려나 봅니다. 봄은 생명이 다시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이제 곧 겨우내 땅 속에 잠자고 있던 푸른 생명의 기운이 올라올 것입니다. 시편의 저자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의 생명이 이미 하나님 안에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있기도 전에 하나님이 자신을 보았고,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다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어붙어 있던 땅 속에 숨어 있는 생명을 느끼며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숨을..

1분말씀 2022.02.12

[틸리히조직신학3_211-215] 58. 예수에 대한 견해의 충돌

틸리히는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에 통일성이 있는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성서가 그렇게 묘사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틸리히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하서 첫 번째로 역사적인 대답을 해야 하고 두 번째로 조직신학적 대답을 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첫 번째 역사적인 대답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틸리히는 말합니다. 이전에도 틸리히가 언급했지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해서 성서의 저자들은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성서는 예수에 대한 일치된 고백 위에 세워진 “공동체의 책”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대답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고요. 큰 틀에서 성서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하여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의 차이..

[1분말씀] 베드로전서 5:7_걱정을 던져라

(벧전 5:7, 개정)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NRSV)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베드로전서 5장 7절은 듣고 또 들어도 기분 좋은 말씀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려'보다는 '걱정'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염려는 생각이 많은 것이고 걱정은 "어떤 일이 잘못될까 불안해하며 속을 태움"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도 걱정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는 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을 하나님께 던지라고 말합니다. 어떤 일이 잘못될까 불안해하며 속을 태우지 말고 그 생각을 하나님께 던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

1분말씀 2022.02.05

[틸리히조직신학3_209-211] 57. 예수가 가진 연속성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예수는 독특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를 독특한 존재로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독특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그를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시도를 하기도 하고 역사적으로도 예수가 살았던 시기를 다른 시기와 완전히 다른 시기로 따로 떼어놓으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틸리히는 이러한 시도에 반대해서 예수의 연속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가 가진 연속성은 공간적인 것이기도 하고 시간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신약성서의 기록들은 예비적인 계시의 담지자들의 생애로부터 유래된 예수의 족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210) 복음서에 보면 예수의 족보가 지루하게도 길게 나와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길게 예수의 조상들에 대해서 언급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복음서의 저..

[1분말씀] 이사야 43:19_새 일을 행하리니

(사 43:19, 개정)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오늘이 2022년 1월 29일입니다. 3일 후면 설날입니다. 설날의 '설'은 설다, 낯설다, 익숙하지 못하다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해의 첫날을 설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그래서 낯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수많은 새로운 일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새 일을 통해 새날을, 우리에게 낯선 설날을 ..

1분말씀 2022.01.29

[틸리히조직신학3_208-209] 56. 하나 됨 안에 불안 집어 넣기

틸리히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이나 불안을 제거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불확실성과 불안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없애고 싶어하죠. 사람들은 확실하고 안정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나 불안을 제거하면 그런 존재를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불확실성을 많이 가지고 살아갑니다. 돌멩이를 생각해 볼까요. 돌멩이가 돌멩이로 태어나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원하지 않는 장소가 가게 될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 정도가 가장 큰 일이 될 것입니다.돌멩이는 어디를 가더라도 돌멩이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 그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만큼 인간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틸리히조직신학3_205-208] 55. 예수에게도 삶은 모호했다

틸리히는 이 부분에서 삶의 모호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예수가 삶의 모호성에 참여했다고 주장합니다. 말이 어려운데, 삶이라는 것이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인데 예수에게도 그랬다는 말입니다. 삶이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은 인간의 유한성에만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여러 대상들 자체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과의 모든 만남은 실천적인, 이론적인 불확실성의 짐을 지고 있다. 이 불확실성은 개인의 유한성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인간이 만난 것의 모호성에도 원인이 있다. (205) 이 부분이 삶의 모호성과 예수가 그것에 참여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어서 그런지 내용 자체도 좀 모호한 것 같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좀 억지스러운 것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

[설교] 누가복음 4:14-21_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설교일시: 2022년 1월 23일 오전 11시 장소: 분당성화감리교회 성경 본문 (눅 4:14-21, 개정)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

설교 2022.01.23

[설교요약] 누가복음 4:14-21_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사렛의 회당에서 전한 말씀이 주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금식하시고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사건이 갈릴리 지방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의 회당에서 이사야서의 한 구절을 읽으시고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가 이를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분이 아니라, 친히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해 실현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신 이유는 첫째로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난한 자..

설교 2022.01.23

[1분말씀] 로마서 8:18_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롬 8:18, 개정)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고난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고난을 피하길 원하고 고난이 닥쳤다면 그것이 빨리 지나가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고난의 유익을 말씀하는 구절이 자주 등장합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일부러 고난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18절도 고난이 끝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잘 견디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의 길이 영광의 자리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난을 겪는 일은 힘든 일임에 분명합니다. 고난 중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분말씀 2022.01.22

[틸리히조직신학3_203-205] 54. 그리스도가 보여준 유한성의 표지들

틸리히는 예수가 유한성을 가지고 있었고 성서가 그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죽음의 위협에 처했을 때 예수는 영웅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예수가 경험한 불안이 성서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존재에 대하여 비존재가 승리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경험했고 불안과 절망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어려움을 당했고 그것을 태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겨내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는 정말 인간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배신할 때 그는 그 사실을 미리 감지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을까요?그랬다면 예수를 인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가룟 유다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의연함과는 거리가 멉..

[1분말씀] 이사야 40:9_아름다운 소식

(사 40:9, 개정) 『아름다운 소식을...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예전에는 교회에서 전도를 많이 했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경계하거나 비판적인 시선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움츠러들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것은 아름다운 소식임에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식을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함께 나누어야죠.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이 아름다운 소식이 아름답게 퍼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1분말씀 2022.01.15

[틸리히조직신학3_198-203] 53. 그리스도가 받은 유혹의 실재성

틸리히는 예수가 받은 유혹은 아주 진지하고 심각한 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만약에 예수가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 즉 신이기만 했다면 그가 받은 유혹은 심각한 것이 될 수 없죠. 그래서 전통적으로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실재적인 유혹의 가능성이 없었다면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통일성(신-인간성)을 대표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8) 틸리히는 욕구와 욕망을 구별합니다. 사실 욕구와 욕망은 구별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거의 비슷한 뜻이죠. 틸리히가 썼던 단어를 보면 좀 더 구별하기가 좋습니다. 욕구는 actual desire 그리고 욕망은 concupiscence 라는 단어를 씁니다. 욕구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살려는 욕구, ..

[1분말씀] 고린도후서6:16_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고후 6:16) 살다 보면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나도 타인에게 다가갈 힘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면 나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고린도후서 6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며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NIV 영어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면서 live 또한 우리 사이에서 걸으면서 walk 친밀한 관계를 맺겠다고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1분말씀 2022.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