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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 대신 '셋이하나 하나님'

분류: 삼위일체-삼위일체의 의미 저는 삼위일체 三位一體 라는 말을 다른 말로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이 너무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 말할 때 약간 체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삼위일체는 발음할 때 부드럽지도 않고 중국글자말이라서 그 의미도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렵고 발음하기도 좋지 않은 삼위일체라는 중국글자말은 기독교 교리에서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잘 담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삼위일체를 풀어서 말하면 '성부, 성자, 성령이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삼위일체라는 말이 이 의미를 제대로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중국글자말을 써서 글자 수를 줄였지만 결국 이 말은 다시 설명해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대신 '셋이하나' 어떻습니..

신학노트 2019.12.05

신학과 철학의 관계_틸리히 신학

틸리히, 조직신학 I, II 조직신학의 본질 (p. 43~53)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서 틸리히가 말하는 구분은 크게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철학: 존재의 구조를 다룬다. 신학: 우리의 존재 의미를 다룬다. 틸리히는 철학과 신학과 차이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합니다. 1. 철학자는 철학의 대상과 떨어져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 노력하나, 신학자는 신학의 대상에 참여합니다. 틸리히는 이런 점에서 볼 때 철학자는 과학자와 비슷하며 과학자에게 의존하며 어떨 때는 과학자보다 더 과학자 같은 모습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학자는 철학자와 달리 신학의 대상에게 떨어져서 초연한 자세를 취할 수가 없습니다. 틸리히는 거듭해서 신학자는 과학자나 철학자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

틸리히 신학 2019.11.12

창조의 목적_틸리히 신학

틸리히는 창조는 창조 그 자체 이외의 다른 특별한 목적이 없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창조는 그 자체를 초월하여 어떠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피조물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의 목적은 창조 자체이며 그의 잠재성의 실현이다. 창조자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의 목적은 창조자의 창조력의 발휘이며, 이것은 그 자체를 초월하여 어떠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틸리히, 조직신학 2, 178-79) 위에서 보면 창조의 목적은 피조물의 관점과 창조자의 관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피조물의 관점: 창조 자체, 잠재성의 실현 창조자의 관점: 창조 자체, 창조력의 발휘 창조의 목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있습니다. 1) 성서적인 주장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틸리히 신학 2019.11.03

섭리(providence)와 궁극적 목적(telos)_틸리히 신학

그래서 나오는 개념이 최종 목적(telos)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피조물의 존재 목적을 종결된 것으로 보지 않고 진행형으로 보면서 마지막의 순간 혹은 마지막 때에 그 존재 목적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teleology 우리말로는 궁극적 목적론이라고 해야 할까요? 최종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이론을 펴는 것이 바로 teleology입니다. 종결되지 않은 목적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창조의 목적이 종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창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가 끝나지 않았다면 창조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러한 창조성이 지속되는 상..

틸리히 신학 2019.11.03

속죄론_틸리히 신학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입니다. 전자와 후자를 완전히 구별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가의 문제는 그가 한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가 누구인지와 관련이 있는 일입니다. 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단순하게 대답한다면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왜 일어났으며 어떤 효과를 일으켰는가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론이 바로 속죄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죄론이라는 말 자체가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거나 죄를 속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미 편견이 들어가 있는..

틸리히 신학 2019.11.02

로고스가 인간이 되었다_틸리히 신학

폴 틸리히, 조직신학 III, 1.V.6 하나님과 인간과 그리스도의 상징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명제는 예수가 신이라고 믿는 기독교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명제입니다. 굉장히 당연히 명제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명제입니다. 그러나, 틸리히는 이 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냥 조금 잘못된 정도가 아니고 완전히 명백한 오류하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라는 주장은 역설적인 명제가 아니고 터무니 없는 명제이다. 이 명제는 그 말들이 의미하는 바를 의미하는 바를 의미하지 않을 때만 의미 있게 되는 말들의 결합이다. (148) 틸리히는 이와 같이 말하면서 이에 대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 신적인 존재들이 하나님 곁에 존재한다는 것은 다신론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둘째, 신적인..

틸리히 신학 2019.10.31

변증신학_틸리히 신학

틸리히의 신학은 한 마디로 하면 '변증신학'이고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상관관계의 방법'입니다. 변증신학: "대답하는 신학"(answering theology) (틸리히, 조직신학 I, 18) 상관관계의 방법(the method of correlation): "상황이 안고 있는 물음을 메시지가 안고 있는 대답과 연관시키는 시도" (틸리히, 조직신학 I, 21) 이런 식으로 틸리히는 자신의 신학의 출발점에 대해서 명료하게 설명하고 조직신학에 대한 설명을 이어갑니다. 변증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가 쉬운 말입니다. 일단 변증법과도 헷갈릴 수 있습니다. 변증신학이 대답하는 신학이라면 변증법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변증은 신을 증명하는 시도를 의미할 때가 많은데 신을 논리적 과학적으로 ..

틸리히 신학 2019.10.31

운명과 자유_틸리히 신학

틸리히는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아예 운명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자유에 의해서 조정될 수 있고 인간에게는 충분한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운명 없는 자유는 단순한 우연성이며, 자유 없는 운명은 단순한 필연성이다." (조직신학 3, 202) 틸리히는 운명과 자유를 결합합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운명도 없고 완전한 자유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같은 페이지의 아래쪽에 있는 문장을 더 인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끄시는 창조성은 인간의 경우 그의 자유를 통해서 작용한다.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의 창조성에 의해서(by) 결정되지만 인간의 자기-결정, 즉 그의 유한한 자유를 통해서(through) 결정된다." (조직신학 3,..

틸리히 신학 2019.10.30

믿음은 궁극적인 관심이다_폴 틸리히 "믿음의 역동성" (1장 중심)

[책리뷰] 폴 틸리히 "믿음의 역동성" (1장 중심) “믿음의 역동성”은 폴 틸리히(1886-1965)의 저서 중 “존재의 용기”와 더불어 가장 널리 읽힌 책 중에 한 권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지 20세기에 가장 저명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인 틸리히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믿음이라는 주제는 기독교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이면서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던 의미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해하기 쉬운 듯하면서도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려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믿음이란 무엇인가? 2장, 믿음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3장, 믿음의 상징들 4장, 믿음의 유형들 5장, 믿음의 진정성 6장, 믿음의 ..

틸리히 신학 2019.10.30

하나님 위에 계신 하나님_틸리히 신학

틸리히 신학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신론입니다. 신론 외에도 여러 가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신론입니다. 틸리히는 기존의 유신론에서 벗어난 새로운 신론을 펼칩니다. 이 신론에서 폴 틸리히는 "하나님 위에 계신 하나님"(the God above God)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은 기존의 하나님이 아닌 새로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말하면 사실 틸리히가 말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틸리히가 말하는 하나님의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는 실존주의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실존주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자연스럽게 발생한 철학입니다. 중세 시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개인이라는 개념을 갖..

틸리히 신학 2019.10.30

[책] 새로운 신론을 향하여_폴 틸리히 "존재의 용기" (1952)

[책 리뷰] 폴 틸리히 "존재의 용기" (1952) “존재의 용기”는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폴 틸리히(1886-1965)가 1952년에 출간한 책입니다. 제목은 흥미롭고 왠지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읽어 보면 아마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은 실존주의 철학의 근본적 질문에 대한 틸리히의 신학적 답변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의 질문은 이런 것이죠. “어떻게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틸리히의 답변은 이 책의 제목 그대로입니다. 인간이 존재하려면 “존재하려는 용기(the courage to be)”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실존주의에 익숙하지 않거나 실존주의적 존재의 질문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책을 읽지 마십시오. 저는 처음에 틸리히의 신학을 알고 싶어서 이 책을 두 번 정..

틸리히 신학 2019.10.30

예수의 세 가지 특징_틸리히 신학

틸리히에 따르면 예수는 인간의 유한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 실존의 상태인 소외를 극복한 새로운 존재였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도 그다지 명확한 표현은 아닌데요. 틸리히는 예수를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관계성 속에서 소외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사람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틸리히가 말한 소외의 문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근거로부터 소외 둘째, 자기 높임(휘브리스)로서의 소외 셋째, 욕망으로서 소외 그렇다면 예수가 극복한 것은 바로 이 세 가지 소외입니다. 첫째, 예수는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틸리히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조차도 하나님께 왜 자기를 버렸냐고 항변했던 것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던 증거라고 지적합니다. ..

틸리히 신학 2019.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