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폴 틸리히: 그리스도론 59

[틸리히조직신학3_203-205] 54. 그리스도가 보여준 유한성의 표지들

틸리히는 예수가 유한성을 가지고 있었고 성서가 그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죽음의 위협에 처했을 때 예수는 영웅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예수가 경험한 불안이 성서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존재에 대하여 비존재가 승리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경험했고 불안과 절망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어려움을 당했고 그것을 태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겨내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는 정말 인간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배신할 때 그는 그 사실을 미리 감지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을까요?그랬다면 예수를 인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가룟 유다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의연함과는 거리가 멉..

[틸리히조직신학3_198-203] 53. 그리스도가 받은 유혹의 실재성

틸리히는 예수가 받은 유혹은 아주 진지하고 심각한 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만약에 예수가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 즉 신이기만 했다면 그가 받은 유혹은 심각한 것이 될 수 없죠. 그래서 전통적으로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실재적인 유혹의 가능성이 없었다면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통일성(신-인간성)을 대표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8) 틸리히는 욕구와 욕망을 구별합니다. 사실 욕구와 욕망은 구별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거의 비슷한 뜻이죠. 틸리히가 썼던 단어를 보면 좀 더 구별하기가 좋습니다. 욕구는 actual desire 그리고 욕망은 concupiscence 라는 단어를 씁니다. 욕구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살려는 욕구, ..

[틸리히조직신학3_195-198] 52. 소외를 극복한 예수

틸리히는 인간에게 소외는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불신앙, 자기 높임, 욕망이죠. 불신앙은 존재의 근거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의미하고요. 자기 높임 hubris은 불신앙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존재의 근거로부터 소외된 상태로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욕망은 자기 주위의 모든 존재를 자기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틸리히에 따르면, 예수에게는 인간이 소외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특징이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틸리히의 설명이 좀 부실하기는 합니다. 대충 그런 것 같기는 한데 결정적인 한방이 없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서 자기 높임에 대하여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서적 모습은 그의 메시야적 소명에 대한 그..

[틸리히조직신학3_189-195] 51. 예수의 말, 행동, 그리고 고난

이 부분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존재가 표현에 선행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예수의 말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든 것이냐, 아니면 예수가 새로운 존재였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이 독특했느냐 둘 중에 후자가 맞다는 주장입니다. 예수가 좋은 말씀을 전해서 그리스도가 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였기 때문에 좋은 말씀을 전했다는 것이죠. 그를 그리스도로 만든 것은 그의 존재이다.... 이로부터 뒤따르는 결론은 그의 말도, 그의 행위도, 그의 고난도, 그의 내적인 삶도 그를 그리스도로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189) 틸리히는 예수의 말과 행동과 고난이 그가 새로운 존재라는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지 그 표현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든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좋은 도덕 선생님으로 여겨야 한다는..

[틸리히조직신학3_187-188] 50. 예수가 새로운 존재이다

틸리히는 이 부분의 제목을 "한 인격적 삶 속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라고 했지만 좀 어려워서 제목을 새로 달았습니다. "예수가 새로운 존재이다"라는 제목이 틸리히가 이 부분에서 말하려는 내용은 간단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아니 우주의 역사에서 소외라는 실존의 상태를 완전하게 극복한 한 존재가 나타났는데 그 존재가 바로 예수라는 것입니다. 틸리히는 첫 문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새로운 존재는 한 인격적 삶 a personal life 속에 나타났다. (187) 한 인격적 삶이라는 말도 좀 어렵습니다. 그냥 '한 인간의 삶'이라고 번역을 하면 이해하기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존재는 한 인간의 삶에서 나타났는데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틸리히조직신학3_184-187] 49.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시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그에 대한 기대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예수가 새로운 시대를 가지고 올 새로운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왕이며 지도자이고 새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를 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믿었던 예수가 옛 시대의 세력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틸리히는 제자들이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해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는 희망의 파괴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죠. 제자들은 두 번째 선택을 합니다. 희망을 내용을 바꿉니다. 이렇게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예수의 부활과 오순절의 성령 체험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신학적 틀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

[틸리히조직신학3_183-184] 48.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역사 비평과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다 보면 성서의 네 가지 복음서 중에 가장 정확한 역사 기록은 무엇인지 찾게 됩니다. 그래서 마가 우선설이니 마태 우선설이니 하는 말이 나오죠. 역사 비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가장 오래된 복음서를 찾아서 그것을 가장 기본 자료로 삼고 나머지는 그 복음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간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무엇이 가장 먼저 쓰인 자료인지 연구하고 그에 대한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마가 우선설을 믿는 사람들이 가장 많습니다. 이것도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이천 년 된 역사 자료들의 선후 관계를 밝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틸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약성서의 모든 책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주장에서는 일치한다. (p.183) 역사적 선후 관계를 ..

[틸리히조직신학3_176-183] 47. 우리는 예수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원래 이 부분의 제목은 "신앙과 역사적 회의주의"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는 예수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로 제목을 붙였습니다. 틸리히가 붙여 놓은 제목을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제가 볼 때는 이 부분이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틸리히의 그리스도론을 공부하면서 제가 궁금했던 질문은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예수와 같은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였습니다. 예수가 위대한 존재라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고 인정하고, 틸리히가 말한 것처럼 예수가 새로운 존재라는 사실도 저는 믿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나도 예수와 같은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틸리히의 조직신학은 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좀 답답했습니..

[틸리히조직신학3_168-176] 46. 역사적 연구와 신학

역사비평은 그리스도교에 위험 요소이기도 했지만 신학에 기여한 바도 많이 있습니다. 틸리히도 비슷하게 지적을 했지만, 제가 볼 때 역사비평의 큰 공헌 중 하나는 현대신학이 탄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대신학의 아버지는 슐라이어마허입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상징으로 가득 찬 이야기로 이해했습니다. 그런 구분의 토대 위에서 현대신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비평이 없었다면 이러한 구분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것은, 신학이 성서 이야기 속에서 경험적인 요소와 전설적인 요소와 신화적인 요소 사이를 구별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169) 이 말은 전에는 성서에 나온 모든..

[틸리히조직신학3_159-168] 45. 역사적 예수 연구와 그 실패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말 자체가 하나의 연구 주제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굉장히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예수면 예수이지 왜 역사적 예수라고 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는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과는 다릅니다. 성경에서 묘사하고 설명하고 있는 예수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보거나, 듣거나 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경험한 예수입니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받아들인 예수라는 말입니다. 틸리히가 이 앞부분에 계속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예수에 대한 사실과 신앙이 서로 상호 의존하는 방식으로 단단하게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실과 신앙은 50대 50이 아니라 신앙 쪽이 훨씬 더 비중이 높습니다. 누군가는 신앙의 비중..

[틸리히조직신학3_157-159] 44. 역사와 그리스도

틸리히는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합니다. 질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사람들로 인해서 예수가 그리스도가 될 수 있었다면 그런 사람들이 없어진다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가?"입니다. 또는 역사가 완전히 끝이 나서, 달리 말하면 역사를 논할 수 있는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예수는 여전히 그리스도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틸리히는 자신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인류는 당장 오늘이라도 자신을 모조리 멸망시킬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틸리히에 따르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가 소외라는 인간 실존을 완전히 극복한 새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나라를 시작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존재를 위한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조건에 대..

[틸리히조직신학3_155-156] 43.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자세

틸리히는 그리스도라고 불린 예수는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인지해야 하는 주제이면서 동시에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주제라고 설명합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또한 믿어야 하는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 속 사실로만 받아들여도 안 되고, 사건에 대한 이해 없이 믿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예수 자신이 새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를 여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가 가지는 왕이라는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죠. 틸리히가 강조하는 내용은 예수는 소외라는 인간의 실존 상태를 완전히 극복한 새로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새로운 존재가 아니었다면 인간은 여전히 소외의 완전한 극복이 가능할 ..

[틸리히조직신학3_153-155] 42.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주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님의 전체 이름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말로 부를 때는 이 호칭 안에 직함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면 예수가 이름이고 그리스도가 성인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온전한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수는 원래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그리스도라고 불렸고 예수가 그것을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틸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예수'라고 불린 인간의 탄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제자들 중의 하나가 그에게 "당신은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

[틸리히조직신학3_146-152] 41.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

틸리히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역설이라고 주장합니다. 틸리히는 여기서 역설을 뜻밖의 현실이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문학에서 말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은 역설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역설인데 어떤 의미에서 이 사실의 뜻밖의 현실이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이해는 중보자 mediator 개념입니다. 서로 떨어진 두 존재 사이에서 서로를 연결해 주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틸리히는 중보는 재결합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존재라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일까요, 아니면 사람일까요? 그리스도가 중보자와 구원자로서 간주된다면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제3의 실재로서 간주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틸리히조직신학3_142-146] 40.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역설

틸리히가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닙니다. 단순한 사실이 아닌 역설이라고 강조합니다. 틸리히가 말하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역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났다." (142) "The New Being has appeared in Jesus as the Christ." 좀 더 쉬운 번역으로 "새로운 존재가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로서 나타났다"로 옮길 수 있다. 틸리히는 이 주장이 역설이며 그리스도교의 모든 주장을 포함하는 역설이라고 말합니다. 틸리히는 이 사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며, 반성적인 합리도 아니며 변증법적인 합리도 아니고 비합리도 아니고 부조리도 아니고 무의미도 아니라 역설이라고 말합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