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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조직신학3_155-156] 43.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자세

틸리히는 그리스도라고 불린 예수는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인지해야 하는 주제이면서 동시에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주제라고 설명합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또한 믿어야 하는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 속 사실로만 받아들여도 안 되고, 사건에 대한 이해 없이 믿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예수 자신이 새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를 여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가 가지는 왕이라는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죠. 틸리히가 강조하는 내용은 예수는 소외라는 인간의 실존 상태를 완전히 극복한 새로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새로운 존재가 아니었다면 인간은 여전히 소외의 완전한 극복이 가능할 ..

[1분말씀] 그리스도인의 대화 주제는?_갈라디아서 3:28

(갈 3:28, 개정)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린다는 말이죠. 유유상종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점이 있는 사람과 연대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고향이나 출신 학교 같은 것을 물어보고 공통점을 발견하면 대화를 시작하죠.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사람도 뜻밖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면 급속하게 친해지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커다란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이 대화의 가장 큰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리..

1분말씀 2021.11.26

[틸리히조직신학3_153-155] 42.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예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주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님의 전체 이름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말로 부를 때는 이 호칭 안에 직함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면 예수가 이름이고 그리스도가 성인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온전한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수는 원래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그리스도라고 불렸고 예수가 그것을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틸리히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예수'라고 불린 인간의 탄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제자들 중의 하나가 그에게 "당신은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

[설교요약] 서기관, 과부, 그리고 제자들 (과부의 두 렙돈)_마가복음 12:38-44

오늘 말씀은 헌금함에 두 렙돈의 돈을 넣은 과부 이야기입니다. 두 렙돈은 한 끼 정도의 식사를 겨우 할 수 있는 정도의 돈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돈으로 환산하면 천 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과부에게 두 렙돈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부가 사회 취약 계층에 속한 사람으로서 돈벌이를 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도 있지만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탄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올바른 해석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율법을 통해서 고아와 객과 과부와 같은 사회 취약 계층을 돌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돌보는 데 앞장서야 했던 종교 지도자들은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적은 재산마저 빼앗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설교 2021.11.17

[틸리히조직신학3_146-152] 41.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

틸리히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역설이라고 주장합니다. 틸리히는 여기서 역설을 뜻밖의 현실이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문학에서 말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과 같은 역설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역설인데 어떤 의미에서 이 사실의 뜻밖의 현실이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이해는 중보자 mediator 개념입니다. 서로 떨어진 두 존재 사이에서 서로를 연결해 주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틸리히는 중보는 재결합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존재라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일까요, 아니면 사람일까요? 그리스도가 중보자와 구원자로서 간주된다면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제3의 실재로서 간주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1분말씀] 그리스도인답게_빌립보서 1:27

(빌 1:27, 개정)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두루뭉술한 말이지만 우리는 이런 말을 들으면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 인간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대우와 같은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 사람답게 사는 것과는 다른 것이죠. 우리는 사람이면서 또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양을 하는 것과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은 다릅니다. 십자가 목걸이를 하거나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 밥 먹기 전에 기도하는 것 등은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울리는 태도를 가지고..

1분말씀 2021.11.13

[신학노트] 정의란 무엇인가?_폴 틸리히 "사랑 힘 그리고 정의"

정의는 참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우리말로는 '바를 정'에 '옳을 의'를 쓰고 있는 정의는 바르고 올바른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무엇이 바르고 올바른 것인지 추가 설명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런 말은 사전에 나온 설명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음 사전에서 찾아 보면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라고 나와 있는데 모호한 설명입니다. 영어로는 justice인데, 정의를 말할 때 옆에 영어로 표기해 주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뜻을 의미하는 정의는 definition이고 올바른 것을 의미하는 정의는 justice라서 정의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어떤 뜻으로 사용한 것인지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justice는 옥스포드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을 의..

틸리히 신학 2021.11.08

[설교] 서기관, 과부, 그리고 제자들 (과부의 두 렙돈)_마가복음 12:38-44

(막 12:38-44, 개정) 『[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

설교 2021.11.07

[1분말씀] 예레미야 1:12

(렘 1:12, 개정)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약속을 합니다. 약속은 미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말이기 때문에 백 퍼센트 지킬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너무 뻔한 약속은 별다른 감흥이 없지만, 지금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미래에 대한 약속은 듣는 사람을 희망에 부풀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지킬 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희망을 주기 위한 약속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듣는 사람도 그것이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약속의 말 자체로 힘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킵니다. 그때를 알 수 없다고 포기하..

1분말씀 2021.11.06

[틸리히조직신학3_142-146] 40.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역설

틸리히가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사실이 아닙니다. 단순한 사실이 아닌 역설이라고 강조합니다. 틸리히가 말하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역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났다." (142) "The New Being has appeared in Jesus as the Christ." 좀 더 쉬운 번역으로 "새로운 존재가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로서 나타났다"로 옮길 수 있다. 틸리히는 이 주장이 역설이며 그리스도교의 모든 주장을 포함하는 역설이라고 말합니다. 틸리히는 이 사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며, 반성적인 합리도 아니며 변증법적인 합리도 아니고 비합리도 아니고 부조리도 아니고 무의미도 아니라 역설이라고 말합니다. 그..

[틸리히조직신학3_139-142] 39. 역사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

히브리어로 메시아, 헬라어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기름부음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 예언자, 제사장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었지만 틸리히는 그리스도는 왕이라고 설명합니다. 제가 볼 때도 이러한 설명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로 계속 타민족의 지배를 받아왔는데 그들 사이에서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예언자나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줄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어봤는데 그때 베드로가 했던 대답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도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이해했는데 이는 예언..

[틸리히조직신학3_137-139] 38. 새로운 존재에 대한 탐구 두 가지 유형

인간은 소외 상태에 놓여 있고 이러한 상태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본능적으로 인간은 소외를 극복하려고 시도합니다. 인간의 곤경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극복의 노력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고 틸리히는 말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존재에 대한 탐구입니다. 틸리히는 탐구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비역사적인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인 유형입니다. 달리 말하면 첫 번째 유형은 새로운 존재는 역사 속에서 절대 발생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유형이고 두 번째 유형은 새로운 존재가 역사 속에서 발생했거나 혹은 발생할 것이라고 믿는 유형입니다. 틸리히는 동양에서는 주로 비역사적인 유형으로, 서양에서는 주로 역사적인 유형으로 새로운 존재를 탐구했다고 설명합니다. 새로운 존재란 유한성의 ..

[틸리히조직신학3_133-137] 37. 성례전, 교리, 감정을 통한 자기 구원

틸리히는 종교, 금욕, 신비 체험, 율법을 통해서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례전, 교리, 감정을 통해서도 자기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례전부터 살펴봅시다. 로마 가톨릭이 성례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교파별로 성례전의 종류가 다른데 로마 가톨릭은 성례전으로 부르는 것이 일곱 개가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세례와 성찬식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해성사도 일종의 성례전입니다. 성례전에 참여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습니다. 특별히 세례가 그렇습니다. 죽기 전에 꼭 세례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성례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에서 성례전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개신교에..

[1분말씀] 시편 119:17

(시 119:17, 개정)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시 119:17, 새번역) 『주님의 종을 너그럽게 대해 주십시오. 그래야 내가 활력이 넘치게 살며, 주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17절 말씀은 개정역의 번역보다는 새번역이 더 이해하기 좋은 것 같아서 위에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개정역은 시인이 마치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나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함이 아닐까요?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그럽게 대해 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1분말씀 2021.10.30

[틸리히조직신학3_132-133] 36. 신비주의의 문제

틸리히는 자기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래서 종교, 율법주의, 금욕에 이어서 이번에는 신비주의와 구원에 대해서 다룹니다. 틸리히는 종교, 율법, 금욕, 신비주의에 대해서 모두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종교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존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좋고, 율법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설명이자 요구라는 점에서 선한 것이며, 금욕도 지나친 탐욕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한 것입니다. 신비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비주의는 신의 현존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고 황홀한 경험입니다. 하나님을 느낀다는 것은 신을 믿는 사람이 가장 원하는 체험이기도 합니다. 신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을 부인하는 종교라면 도덕 체계에 불과할 뿐이죠. 그런 것을 종교라고..